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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l 19. 2023

보호자

혼자서 입원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동생이 동행해줬다. 입원 수속을 밟고 짐을 옮기고 입원 기간동안 마실 물과 음료, 수술 후 필요한 얼음물과 얼음팩을 챙겨주었다.

남동생과 나는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보통의 남매관계이다. 살갑게 연락을 하지도 않고, 생일이라고 굳이 축하 인사도 주고받지 않아도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필요한 것들은 챙기는 사이.

언제부턴가 나보다 키가 훌쩍 크고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남동생은 외국에 있는 남편 대신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긴장하지 말라고 이것도 기념인데 사진이라도 찍으라며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을 찍어두기도 했다.

혼자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도 내일 수술 때 오겠다며 PCR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생이 가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담당교수님이 왔다.

수술 방법을 설명하며 CT상 임파선에도 작은 혹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봐야 알지만 만약 임파선에도 암이라고 판명이 되면 양쪽 갑상선 모두 절제하고 나중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셔야 할 수도있어요.' 하며 내 눈을 바라봤다.

입원 기간도 며칠 더 길어지고 치료 기간도 길어진다는 말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나 눈물이 쏟아졌다.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다독이고 있던 마음이 다시 무너졌다.

교수님은 휴지를 건네주며 수술 잘 해주겠다고, 그리고 아닐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며 나를 달래주셨다.


마침 도착했다는 동생의 메시지가 왔다. 교수가 다녀가며 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30분만 더 있다가 나올걸.' 하는 미안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있었으면 좀 덜 슬펐을까...덜 무서웠을수는 있었도 어쩌면 가족이 아닌 의사선생님 앞이라 내 감정을 그대로 꺼내 툭 울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울고나니 내 능력밖의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술 당일, 수술실 앞까지 동행하고 동생은 밖에서 기다렸다. 남편이었더라면 손이라도 잡았을까. 너무 무서워 동생 손이라도 잡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폴대를 끌고 간호사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수술실 앞이었고 그대로 동생과 분리되었다. /갔다올게.'한마디 남기고 나는 들어갔다. 대기실에 누워 준비하고 있으니 대기실 앞에서 오가지도 못하고 서성이던 남동생이 "누나 잘하고 와! 화이팅!!"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수술이 끝나고 소독약과 피 묻은 수술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통증으로 목을 움직일 수도 없고 기력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간호사는 남편이라 생각했는지 "남편분, 환자 상의 갈아입혀주세요." 하는데 순간 당황한 동생이 "저....남동생인데요...."

잠깐의 정적, 간호사가 옷을 갈아입히고 남동생은 고개를 창문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보호자의 역할이 쉽지 않구나.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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