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지 않았으면 좋겠어.
병원에 가면 가족력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알레르기성 비염부터 시작해서 큰 질병에 이르기까지 가족력을 무시할 수 없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가족력과 유전에 대해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내가 진단을 받고 난 후 아이들에게 알리는 것 다음으로 큰 숙제는 부모님께 알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갑상선암은 아니지만 갑상선에 혹이 생겨 수술을 한 이력이 있다. 다행히 양성이어서 암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갑상선에 결절이 생긴 것 자체가 유전이 아닌지 의심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나와 코로나로 해외 입국자 의무 격리를 끝내고 부모님과 마주한 첫날,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한국 입국 시에도 격리, 중국으로 돌아가도 최소 3주의 격리가 필요한 시기, 아이들은 학기 중이었는데도 데리고 나올 정도였으면 분명히 의심은 하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아이들이 밖으로 놀러 나간 사이에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사실 중국에서 검진을 했는데 암 이래. 그래서 들어왔어."
대수로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설마설마하면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괜찮다, 괜찮다, 수술하면 괜찮다 나를 다독이셨다.
아빠는 너무 걱정 말라며 묵직한 몇 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셨고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우셨다.
"미안하다, 내가 혹이 있어서 너도 생겼나 보다. 왜 그런 것까지 닮았니..."
"엄마, 엄마가 미안하면 내가 나중에 우리 딸한테 나도 미안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유전이 아니라 그냥 생긴 거야. 미안해하지 마."
미안해하지 마라고 했지만 만약 나도 같은 상황이라면 엄마와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나의 장점을 닮았으면 하고, 단점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건 닮지 말아야 할 부분을 닮은 아이다. 나의 단점, 하다못해 작은 습관까지 닮은 경우가 있다.
'아, 이것까지 닮았다니..' 좌절스럽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낳아준 나 자신이 더 원망스러울 것 같다. 엄마도 나를 볼 때 같은 심정이었겠지.
엄마 뱃속에서 분리된 지 40년이나 지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낳아줘서 미안하고, 하필 그 수술이 엄마와 같은 수술부위라 당신 때문이라고 죄책감을 느끼셨겠지.
"엄마 때문이 아니에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눈물 많기로 소문난 엄마가 그날은 생각보다 울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보다 담담했고 씩씩했다.
지금껏 봤던 엄마와 다르게 어색할 만큼 씩씩하게 수술하면 괜찮다며 경험자 포스를 풍기며 내 손을 잡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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