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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을 찾아 떠난 여행 그리고 1년 후: 베네치아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5)

베네치아 본섬을 걸어서 뚜벅뚜벅


처음 와보는 이탈리아 그것도 물의 도시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도착해서야 나는 조카아기의 웃음에서 벗어나 오래간만에 자유를 느끼면서 편안하게 잠을 들었다. 여행지에서 나는 아직 시착적응을 못해서인지 아니면 나의 새벽기상 버릇인지 새벽 일찍 일어나 평소대로 창을 활짝 열어 새벽하늘을 보았다. 별을 휴대폰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잘 보인다. 밤하늘에 별만 보는 것 그 자체도 나에겐 힐링이었다.


베네치아 호텔 창 밖에서 보이는 별 힐링 그 자체

퇴사로 인한 불안과 감정을 별을 보면서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이 날은 베네치아 본섬을 걸어서 다니기로 했다. 베네치아는 도로보다 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은 수상택시나 곤돌라와 같은 작은 배를 이용해야만 한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여서 그냥 나는 곤돌라를 이용하지 않고 많이 걸어야만 하는 골목길 투어 콘셉트로 그냥 목적지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걷고 걷다 보면 골목이 막혀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길로 통하게 된다.

좁고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아마 인생도 골목길처럼
막힌 길도 있지만
시간이 걸리지만 돌아가면
다른 길로 연결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나를 다독였다.

베네치아 본섬 골목길

베네치아 골목길은 아기자기하고 또 골목길에서 만나는 수로도 예쁘다. 수로에서 곤돌라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베네치아 수로


베네치아는 명품거리도 골목길에 있고, 골목길에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도 많다. 골목투어의 묘미를 여기서 맛볼 수 있어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명품 막스마라 그냥 보기만 하고 상점엔 들어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백수여서. 그 대신 골목길에 상점들을 눈으로 호강했다.

베네치아 골목길에 있는 명품점 막스마라와 아기용품 수공예 상점


이렇게 골목길을 걷고 걸어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좁고 어두웠던 골목길을 나왔더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넓은 광장과 화려한 성당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보였다.


이 기분 뭐지?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과 산마르코 성당

    어둡고 좁은 골목길의 투박함, 밝고 넓고 넓은 광장에 있는 화려한 성당. 어울릴 것 같지 않는데 어울린다. 쉬지 않고 골목길을 걸어 다녔지만 이 광장에서는 걷기보다 길 위에 서서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멍하니 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 겉은 화려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유로운 싱글언니였지만 이때의 내 심정은 좁고 어두운 골목길 같았다. 마치 막혀있는 골목길처럼 내 심정도 어딘가에 꽉 막혔었다.


이렇게 산마르코 광장 주변을 돌아보면서 나는 나를 내려놓고 그냥 광장에서 즐거워하는 사람처럼 그냥 힐링하기로 했다. 힐링하기 위해서 걷고, 걸으면서 나의 건강도 챙기고, 지쳐있던 나의 몸과 마음을 챙기기 위해 걸었다. 구글 지도로 나의 이동 거리를 확인해 보니 이 날만 걸어서 15.4km 2만 걸음.


한국에서 했던 수영을  배냥 여행을 하면서 수영대신 걷기 운동으로 부족한 운동을 메꾸어 나갔다. 운동이야 말로 나를 힐링으로 이끄는 길이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플 때 나를 돌봐줄 가족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죽기보다 싫었던 운동도 몇 년 전부터 꾹꾹 참아가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수영은 생존운동이면서 힐링 그 자체다.


1년 후 오늘. 이 날은 디지털 배움터에서 하루 종일 수업이 있는 날이다. 시니어 서너 분 밖에 안 계시지만 한 분 한 분에게 맨투맨 식으로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딸리고 기가 딸린다. 시니어 분들은 그들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디지털 배움터에서 다 해결하시려고 한다. 이 분들 한 분 한 분의 고민과 문제점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저녁때가 되면 나는 파김치가 되어 간다. 원래 수다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하루 종일 새처럼 쫑알쫑알거리면 머리가 띵하다.


파김치가 되어 지친 나를 다시 일으켜 주는 것은 수영이다. 수영장에 도착하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일몰 그 자체가 힐링이다.

수영장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일몰

오랫동안 수영을 배웠지만 나는 수영을 잘 못한다. 수영 강사가 나를 안쓰럽게 볼 때가 더 많다. 그런데도 나는 수영이 좋다. 힘들지만 헉헉 거리고, 씩씩거리면서 수영을 하다 보면 그날 피로를 싹 잊을 수가 있어서 힐링이 된다. 그리고 수영장 안에서 거의 벗은 몸으로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이 좋다. 그냥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힐링이 된다. 이 날도 나는 디지털 배움터에서 지쳐있던 몸을 가지고 수영장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냥 샤워기에 물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뭐지?' 하고 깜짝 놀라 둘러보니 가지고 왔던 욕실 바구니가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진 것이다. 나는 주저앉아서 욕실용품을 바구니에 다시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웬 꼬마아가씨가 다가오면서


괜찮으세요? 안 다치셨어요?

 모르는 꼬마천사였다. 초등학교 1학년도 안되어 보이는 귀여운 꼬마였다. 그 꼬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머! 괜찮아.
걱정돼서 샤워하다 달려온 거야?


네!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감동 그 자체였다. 전혀 모르는 꼬마가 나를 걱정해 주다니. 너무 예뼜다. 그리고 피곤했던 몸이 힐링이 되어갔다. 세상은 힘들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조그마한 것에서 힐링이 되어 살만한 세상이다.


지쳐가는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 주고 힐링으로 이끌어 준 것은 수영이다. 수영을 통해서 새로운 정을 만들어가고 나의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나간다. 수영을 잘하지는 못해 성과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한 달 전 보다 오늘이, 1년 전 보다 지금의 수영 실력이 점점 느리게 잘하고 있다. 비록 남들은 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예전보다 지금이 낫다. 성격이 급해 빠른 성과를 기다리는 나이지만, 그러나 수영에 있어서 결과는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 그냥 천천히 꾸준히... 나의 닉네임 랑잠 Langsam처럼.


독일어 langsam처럼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은 천천히 꾸준히 힐링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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