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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를 떠나는 아침에 왠 지진?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7)

베네치아를 떠나는 아침에 지진? 

지진 맞아? 나만 느끼는 지진?


베네치아의 마지막 새벽. 이 날 새벽에도 미라클 모닝으로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런데 아침 먹으러 가기 전 오전 7시, 갑자기 바닥에서 내 다리가 덜덜 떨고 있다. 그리고 노트북 키보드에 얹혀있는 내 손가락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뭐지? 


그런데 조용하다. 처음에는 내가 피곤해서 몸이 떨린 것이라고 착각했다. 왜냐하면 너무 조용해서.


다시 블로그 글을 써 내려갔다. 다시 이상한 진동을 느꼈다. 처음의 떨림보다 더 심했다. 순간 '불안'이라는 두 글자가 내 머릿속에 찾아왔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호텔룸을 문을 열어 복도를 쳐다봤는데 그냥 조용하다. 

또 착각일까? 그런데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구글을 검색하려 하니 인터넷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일어난 것 같은데 호텔은 너무 조용하다.


만약 지진이라면 한국에서는 벌써부터 재난문자에 아파트 경보 온 동네가 시끌벅적 할 텐데 이렇게 심한 울림에도 너무 조용한 게 이상했다. 다행히 몇 분 후 지나니 인터넷 접속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당연히 한국 인터넷 검색에는 안 나올 것 같고 구글로 영어로 '베네치아 지진' 이렇게 검색했는데 나오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독일에 있는 동생한테 카톡으로 확인해 보라고 했다. 지진 난 것 같으니 독일 뉴스에 나오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동생이 하는 말 아무런 기사도 없다고 한다. 동생한테 여기 지진 난 것 같다고 말을 하니 그냥 빨리 나가서 기차 타고 다음 여행지 베로나로 가라고만 한다. 동생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머물렀던 호텔도 조용하고 나만 이상한 여자가 되었다.

베네치아 역에서 올린 SNS 숏영상: 베네치아 지진

조식을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데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부부가 구글을 보면서 영어로 서로 대화를 한다. 근데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구글에서 베네치아를 검색해 보았다. 그때서야 이탈리아 베네치아 인근에 지진 강도 5 정도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기가 막혔다. 지진이 발생했는데 왜 이렇게 태연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난 빨리 여기 베네치아를 떠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체크아웃을 서둘렸다. 체크아웃하면서 호텔비 결제하기 위해 혹시 지진 났냐고 짧은 영어로 호텔직원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아침에 두 번 정도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불편한 게 있었냐고 물어본다. 


불편한 점?


생각해 보니 지진으로 그렇게 나한테 피해가 발생하거나 불편한 것은 없었다. 단지 인터넷 접속이 끊겼다는 것 외에는.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그렇지!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이러면서 나는 결제를 하려고 숙박비가 얼마 나왔냐고 했더니 금액을 알려준다. 그리고 '시티택시비'가 10유로 정도 된다고 나보고 내라고 한다. 또 한 번 기가 막혔다. 이해도 못했다. 나는 그 친절한 직원에게 따졌다.


난 택시를 부른 적이 없는데
왜 택시를 마음대로 호출? 
그리고 여기는 수로만 있는데
어떤 택시? 
그리고 그 택시가 혹시 수상택시?


영어도 짧은데 폭풍질문을 해댔다. 이 불쌍하고 착하고 친철한 직원은 이 시티택시는 자신이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라 시티에서 정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내야 한다고 한다.


진짜 기가 막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 필요도 없는 택시를 그것도 수상택시를 타라고 한 것 같아 불쾌했다. 이른 아침 지진에 이어 무슨 말도 안 되는 택시비까지 내는 것 같아 기분이 꽝이었다. 이렇게 나와 호텔직원이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어느 흑인부부가 나한테 말을 건넨다.


여기 이탈리아는 어쩔 수 없이 시티택시를 내야 한다고. 자신들도 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조심스레 물어봤다.


혹시 그것 택시가 아니라 택스?


모두들 택스라고 한다.  영어가 짧은 나였지만 공부를 안 하고 그냥 이탈리아에 온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도시세'라는 조세법이 있어 관광객은 무조건 city tax를 지불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몰라서 시티에서 운영하는 택시인줄.


너무 창피했다. 그러나 직원과 내 뒤에서 결제를 기다리던 노부부는 그냥 예쁜 미소를 보여주면서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호텔을 나서 베네치아 기차역에서 베로나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또 지진이 발생했는데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city tax'를 'city taxi'로 잘못 알아 들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 첫 여행지에서 새로운 체험과 새로운 정보를 앉고 그다음 여행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로 갈 수 있었다.

베네치아 기차역과 기차를 기다리는 나의 배낭 그리고 배로나 행 2층 기차 안


그때 그날 1년 후 오늘 나는 전날 나에 강의에 대한 말도 못 한 지진과 같은 혹평을 받고 잠든 다음 날인 오늘 너무 힘든 날이었다. 진짜 지진 이후 황폐한 도시와도 같았다. 이른 아침 7시에는 왕초보 프로젝트에 있는 수강생  한 명을 코칭이 있었다. 나보다도 바쁜 직장녀인 그녀를 코칭해 줬는데 너무 고마워한다. 나는 전날 다른 교수에게 혹평을 받았는데 나의 학생은 나를 위로해 준다. 왠지 따뜻함이 차가왔던 나의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 워주었다. 


이 날은 하루종일 디지털 배움터에서 수업이 있는 날. 다른 때와 달리 이 날은 즐거웠다. 얼마 안 되는 시니어분들이지만 AI 툴을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신다. 


마지막 하루는 나의 프로젝트 '왕초보쌤 프로젝트'의 나의 학생들의 첫 강의 무대가 있는 날이다. 저녁 8시부터 줌으로 체크해 보고 9시부터 밤 11시까지 릴레이 강의였다. 세 명이 강의를 하는데 직장맘에 힘든 IT 쪽에서 일을 하기에 강의 준비할 시간이 따로 없어 새벽 3시까지 숙제를 하면서 준비한 강의였다. 이들도 불안했지만 나도 초조했다. 침착하게 잘해나가길 바랐다. 왜냐하면 나는 전날 내가 어느 특강에서 나는 쓰다리 쓴 혹평을 받았기에 이 분들의 첫 강의무대에 대해 많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 걸?


너무너무 완벽했다. 변수가 발생했는데도 위기를 침착하게 잘 대처하고 조근조근하게 강의를 이어나가고 또 시간 내에 완벽하게 소화를 모두 해냈다. 강의 시간 지키는 것이 어려운데 나도 못해서 전날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데 이들은 완벽했다. 강의에 참여해 준 수강생 모두가 만족해 주었다.


왕초보쌤 프로잭트의 첫 무대

밤 12시 다되어 오카방에서 서로들 응원을 하면서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 나에게 도와주어서 이끌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난 이렇게 치유를 받았다. 전 날 지진과 같던 혹평을 이들의 예쁜 강의와 예쁜 말로 나는 위로를 받고 다시 시작한다. 마치 1년 전 오늘 지진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낭만의 도시 베로나로 떠나는 것처럼 나도 어제보다 나은 희망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의 힐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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