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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의 낭만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8)

로미오와 줄리엣의 낭만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

비 오는 아침 낭만의 베로나에서 뚜벅뚜벅


베네치아에서 베로나로 이동한 전날의 폭우에 이어 1년 전 오늘 이 날 새벽에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원래 유럽 소도시에서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그냥 도시 전체를 걸어 다닌다. 베로나에 도착한 날은 폭우여서인지 새벽에 지진 때문인지 아무튼 몸이 많이 피곤했다. 기차역에서 이미 예약해 두었던 호텔까지 좀 멀기도 했고 폭우와 캐리어와 배낭을 가지고 걸어가기엔 힘든 상황이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 중에 아프면 안 되기 때문에 숙소에서 도착해서 그냥 쉬려고 했었는데 그런데 왠 일? 한 동안 코로나 백신 접종 이후 안 하던 생리가 이 날 나오기 시작했다. 갱년기 증상인지 아니면 코로나 백신 때문인지 한 동안 월례행사가 없어서 솔직히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행지에 도착해서, 또 폭우가 내리는 날에....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현실의 도시로 돌아온 듯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폭우 속에 우산이 없기에 모자를 쓰고 마트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구글지도가 안내해 준 마트에 가서 겨우 생리대를 사가지고 호텔에 들어와 잠만 잔 것 같다. 비는 계속 내린 듯했다. 1년 전 오늘 새벽까지. 그래도 다행히 푹 잔 덕부에 새벽에 일어나서 방탄커피와 블로그를 쓰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다행히 비가 오전 10시쯤에 그쳐 나는 다시 작은 배낭을 메고 드디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낭만 도시 베로나 시내로 뚜벅뚜벅 걸었다. 이 날 하루 종일 나는 베로나 구시가지를 19km 뚜벅뚜벅 걸었다.


걸으면서 느껴지는 낭만. 나는 솔직히 낭만가는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 온 뒤의 예쁜 도시를 걷다 보니 나도 낭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 피에트로 성 광장에서 바라보는 베로나 구시자지를 감싸 안고 흐르는 아티제강과 베로나 시내 전경. 너무 예뻤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낭만도시 이탈리아 베로나

나는 이 전경을 보기 위해 산 피에트로 성 광장 꼭대기를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뚜벅뚜벅 올라갔다. 성에 오르다 나뭇잎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도 찧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베로나 산 피에트로 성으로 뚜벅뚜벅

힘들게 올라온 꼭대기에서 내려보는 전경은 그냥 선물 그 자체였다. 그 선물을 가지고 베로나 구시가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 도시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다.

역시 시내에는 어디서든 사람들이 붐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줄리엣의 집에서 줄리엣 동상을 만지면서 낭만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낭만은 나에게 없다. 그러고 보면 나란 사람은 진짜 낭만을 못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도 로맨스보다 그냥 액션 영화를 더 좋아하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메로나에서 줄리엣의 저택

그냥 난 낭만의 저택 줄리엣의 집보다 인근 시장이 더 좋았다. 시장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한국 집 근처에서는 전통시장을 안 가지만 왠지 여행을 가면 특히 외국에 나가면 항상 전통시장을 찾는다. 베로나에서도 역시 나는 베로나 시장을 둘러보았다.

베로나 전통시장

이 날 하루는 뚜벅뚜벅. 낭만은 없는 나였지만 뚜벅뚜벅 걸으면서 낭만을 느껴보려 애쎴다.


역시 사람이 몸이 피곤하면 많은 것을 생각 못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퇴사 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텐데 이 날 성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어서인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르기만 했다. 성 위에 올라서 베로나 시가지를 둘러보며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안 찍던 나의 모습도 남겼다. 낭만의 도시에서 전혀 낭만적이지 않는 나의 모습 그런데 재미있다.


그리고 1년 후 오늘 나는 도서관에 밀렸던 일을 정리하기 위해 가는 도중 근처 공원에 한 바퀴를 돌면서 또 셀카로 나의 모습을 남긴다. 여행을 못 가는 대신 아침마다 들리는 이곳 안성맞춤랜드.


베로나 고성에서 찍은 1년 전 나의 모습(좌)과 도서관 가기 전 나의 인생여행지 안성맞춤랜드 (우)


1년 전의 오늘 사진과 1년 후 오늘의 사진을 비교해 보니 나는 같은 후드를 입고 같은 핀을 머리에 꽂고 나의 모습을 남겼다. 너무 웃기다. 어쩌다 같은 후드를 입고 있는지.


1년 후 오늘 아침도 나는 1년 전처럼 피곤했다. 전날의 연이은 왕초보쌤 프로젝트 강의 릴레이로 피곤에 젖어 있었다. 1년 전 오늘 전날 밤처럼 어제도 비가 많이 내렸지만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공원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나를 돌아보기에 좋은 날씨였다.

낭만은 없는 나였지만 인생의 길을 담고 있는 이 공원에서 나를 돌아보니 이 보따리장수처럼 뚜벅뚜벅 걷고 나름 낭만의 산책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목적지에 언제 도착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보따리장수처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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