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를 찾고 "나" 로 살아가기

세상을 보는 시각을 세팅하기

by 인류에 대한 기여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영원하지 않은 삶에서 관망하는 태도로 살지 않았을까?

나를 찾기 위해 어떤 생각을 정리해야 할까?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다르냐? 이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중국에서 임제종(臨濟宗)을 개종한 임제의 후예 청원유신 선사의 말이다.



성철스님이 원용하면서 국내서도 유명해졌다. 이 말은 수도자가 작고 대수롭지 않게 득도했을 때는 물이 산으로 산은 물인 듯 혼란스럽지만, 득도하는 규모가 커지면 물은 물로 산은 산으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즉, 외부 세계나 자연을 주관 작용과 독립해 존재한다고 관망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는 말과 같다.



내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진 시기에는 항상 주변에 많은 조언을 구하게 된다.

내가 부족한 점이 뭘까... 그때 어떻게 했었어야 하나.


왜 나는 기대한 만큼의 인간관계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고 항상 섭섭함을 느끼는가?

내가 충성한 보스와 챙겨준 후임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나?

왜 내 맘이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다시 세팅하기.


1.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아니라 내 자리가 나를 평가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적 자리, 사회 평판, 그리고 뭐 하는 사람인지를 정의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자리가 끝나면 나에 대한 평가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본인이 변한 척 연극하는 행동을 해도 남들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 나의 자리를 버리고 자연인으로 회귀할 수 있는가?

너는 그럴 수 있니?.....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니?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2. 역시나 경제적 자유도


역시나 평판 다음에는 경제적 자유도가 가장 중요하다. 자유도를 높이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요소이다.

단순하게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경제 활동 없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사애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아 보이는 가정이 오히려 더욱 경제적 자립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물건이나 돈이 아니라, 물건이나 돈으로 실현하는 경험이다.


충분함이라는 교훈, 다시 말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나면 무엇이든 더 많이 가질수록 돌아오는 보상을 줄어드는 경향은 확실하다.(물론 기본적인 욕구가 어디까지 인지도 현재는 불확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서는> "부유함은 소유가 아니라, 사용에 달려 있다"라고 주장했다.

만족스러운 삶에 부합하는 가치와 목적, 그리고 현재의 선택과 욕구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적 자유도 다음에 나는 경제적 사용 방법에 대해 고민하리라.


3. 남들에 의한 평가


가족이 왜 필요한가? 친구가 왜 필요한가? 그들에게 나는 이미 보편적인 관계의 틀 안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빠고 그리고 동창이고 선후배고 동료이고 후임이면서 보스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남들에 의해 평가받는 나의 모습은 아무도 그러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정말 중요하게 평가받는 요소이다. 남들에 의한 평가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를 포함 내 주변의 대부분이 그렇다.



나처럼 살기


나중에 이 글을 내가 다시 보게 되면, 지금의 나의 생각이 그때의 나의 생각과 동일할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생각이 그때도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정말 연구하고 추적해 보겠다.


결국에 본인의 삶이 라이프 사이클/스타일/ 패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있으면 만족하겠는가?

* 어느 정도의 사회적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 만족하겠는가?

*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도를 가지고 있으면 만족하겠는가?


삶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아아버린 시점에서 나는 다시 어떤 내가 되어야 할지 스스로를 정의 내리고 만들어야 한다. 웃기지 않은가? 나는 이미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를 만들어야 하는 존재인가?


1. 인간관계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여지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너무 잦은 만남은 불필요하다. 잦은 만남은 내가 매우 불필요한 사람인 듯 잉여 인간처럼 남들에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다.


- 주변사람들에게 너무 마음 쓰지 말자. 어차피 이어질 인연은 이어지고 만나서 부딪치는 인연은 부딪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예의 있게 사람을 대하는 생활 자세는 언제나 잊지 말고 유지하자

- 인연이 생각보다 자유롭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앞으로의 시대는 점점 더 그러할 것이다.

인연을 매기 위해서는 본인의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다. 몇 번은 상처받을 마음, 그리고 계속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의지... 마음...



2. 인류에 대한 기여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해지고 싶었던 인원이 했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돈을 많이 벌려는 이유는, 남을 돕고 싶어서라고... 인류에 대한 기여가 작은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절대 큰일도 아님을 확신한다.


그래도 살아가는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정말 비참하지 않을까? 인류에 대한 기여를 하자. 혹은 후세에 내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나의 흔적을 남기도록 하자.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세가지 인생 자산


아리스토 텔레스는 그의 저서(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 생활의 자산을 세가자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외적인 것, 영적인것, 육체적인 것이 기본 인생 자산임을 이야기 했다.


첫번째 범주는 '인간을 이루는 것' 즉 인격이다.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와 그 함양이 포함된다.

두번재 범주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 즉 재산과 소유물이다.

세번째 범주는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이다. 즉 명예, 지위, 명성이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고 행복의 범위는 미리 정해진 나의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어찌 지금은 산과 이 글을 쓰기 전의 산은 같은 산인가? 다른 산인가? 궁금할 따름이다.



최종 수정 날짜 : 23년 4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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