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비관적이고 염세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운명을 사랑하자
삶은 부조리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극단적인 양면의 이론이 모두 맞거나 틀리게 되면, (소위 이야기하는) 삶의 중심점이라는 부분은 흔들리고,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혼란을 겪게 된다.
철학자 중에 최고의 염세주의자로 불렸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프리드리히 니체(1833~1900)와 함께 "생(生) 철학자"로 삶에 대한 이런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철학자이지만, 실제적으로 "염세주의", "허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
'망치를 든 철학자' 기독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고, 이성적인 것들이 이면에 숨겨진 비이성과 광기를 쉽게 쓴 철학자,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는 나보다 더 완전하고 순수하고 이해심이 있었다. 광기도 나보다 약간 더 심했다."
"인생은 고통이요, 이 세계는 최악의 세계" ,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 "사는 것 자체가 고통" : 우리의 행위가 이기주의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윤리적, 심리적 해탈이 필요하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세상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졌는지를 되돌아보라.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세계는 나의 표상”
아는 것과 사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다.
사는 것은 알 수 있는 것 아래 있는 세계, 곧 의지의 세계에서 진행된다. 그것은 맹목적이며 충돌한다
이에 눈에 보이는 세계의 유한성에 갇히지 말고 진정한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표상, 즉 사물의 현상 만을 인식할 수 있다.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표상이 아닌 신체를 제시하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란 개념은 일반적인 의미의 뜻뿐만 아니라, 인간의 맹목적인 감성인 ‘욕망’, ‘욕구’, ‘갈망’, ‘추구’, ‘노력’, ‘고집’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쇼펜하우어는 또한 이 개념을 넘어서 식물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힘, 광물이 결정을 만드는 힘, 나침반이 북쪽을 향하는 것, 중력의 작용 등을 모두 의지로 보았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말을 던지는 대신 삶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즐기고 극복할 필요가 있다.
"삶의 고통은 운명", 현실에 주어진 고난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 아모르파티(Amor Fati)
솔직함이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 피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