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 생활자의 배움

독서 역량 강화

by 부키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것의 당위성이 사라지고 있다.

나를 개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 중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랜 기간 당위성을 갖는 명제처럼 통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이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나를 이끌어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에는 많은 동영상과 AI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인간의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데 책은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가?


‘OECD PISA’ 검사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읽기와 고급사고력에서 많은 불균형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 내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나의 주장을 정리하는 것, 추상적 개념을 추론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여실히 저하되고 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글은 읽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높은 수준을 보인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력, 고차원적 사고로 이끌어 내는 능력은 조사대상 국가들 중 끝에서 세 번째라 한다. (100개국 대상, 각 국의 중3 학생 300여 명, 2018년 조사 ) 어느 나라보다 디지털 기기가 빠르게 보급되고, 그만큼 미디어 등에 노출되는 속도와 양이 많았던 우리 청소년들의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책을 읽은 것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까?

책을 많이 읽으면 고급 사고력을 갖게 될까? 비판적인 고차원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독가이다. 하지만 모든 다독가가 그런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 독서에도 발전의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절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고, 애써 배우고 노력해서 성취하는 능력이다.


올해 봄부터 ‘독서토론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 토론을 이끌어야 하는 ‘논제‘를 만들기 위한 독서와 논제 작성, 진행, 실익이 있는 토론을 이끄는 역량 등을 배우고 있다. 또한 지역 도서관에서 ’독서 동아리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있다. 독서에 대한 이론과 가치 있는 독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이에 ’독서 동아리’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그러한 능력은 함께 읽을 때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독서는 해석에서 독해로 넘어가는 단계를 갖는다.

해석은 말 그대로 글로 쓰여진 내용을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잘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단계다. 이 때는 나의 배경지식을 근거로 해석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가치관 등에 비추어 글을 이해하고 수용한다. 혼자의 독서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나름의 감상을 쓴다거나 서평을 쓴다면 표현의 단계까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추론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새롭고 낯선 관점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독해라고 보기 어렵다.


타인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다른 감상, 서평을 듣는다면 나의 배경은 확장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을 만나게 된다. 나의 의견과 상충된다면 갈등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추론하기도 하고, 반론하기도 한다. 이제 제대로 된 독해의 단계에 들어선다. 추론적 이해가 이루어진다. 물론 타인의 의견을 그저 듣고 흘려보내면 독서의 단계를 올릴 수 없다. 나의 그것과 충돌시키고 비교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말이다.


이렇듯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관점을 알게 된 후에는 나의 입장을 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책에는 ’양가의 감정’을 갖게 하는 대목이 있다. 공감과 비공감/ 동의와 비동의 등을 따져보게 되는 ’ 선택’의 단락이 있다. 비판적 시선으로 이해하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역시 혼자 하면 편견이나 오류, 오판으로 남기 쉽다. 이에 대한 다른 이들의 입장과 그 이유, 근거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토론이 필요하다. 이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비판적 이해는 시대적 차이에서 올 수도 있고, 작가 고유의 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 이해하는 것으로 나의 배경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평가해 준, 책을 읽고 ’선택 논제‘를 만들었다. 작가의 의견을 비판 없이 무조건 수용한다면 작성하기 어렵다. 동의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 해석이 다양하게 되거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부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은 부분 등을 찾아 질문을 만든다. 그리고 나누어야 한다. 구성원 모두 각자의 입장을 정하고 이에 대해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독서의 마무리 단계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마지막이면 금상첨화겠지만.


혼자 책을 열심히 읽는 것으로 독서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너무도 지겹고 지극히 주관적인 취미만 될 것이다. 깨지고 붙이고, 커지는 과정이 있어야 생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함께 읽는 사회적 독서가 필요하다. 그 공부를 하고 있다. 새로운 배움에 설레는 시간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독서 생활자의 업무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