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녹화를 마치고 호수 사진 위에 ‘낭만주의자들을 위한 위로의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라는 글씨를 대충 써둔 썸네일을 만들고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단다. 그냥 4~5명만이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영화에 대한 좋은 해석이라고 감탄해주는 댓글을 달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 그런데 무슨 일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회수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확 늘어났단다. 내가 그 동영상을 올렸던 시기가 예상치도 않게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으로 연기했던 영화의 한국 개봉일 무렵이었지. 그리고 그 영화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주인공 못지않은 낭만주의자 역할을 맡았던 터라, 그 영화가 연상된다는 평도 많았었어.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하고 조금 지났던 영화였던 지라, 그 영화의 효과로 조회수가 늘어날지는 몰랐단다. 내 동영상을 칠만 명이 보았고, 그중에 천 이백 명이 내 채널을 구독하겠다는 버튼을 눌렀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단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보게 된 칠만 명 중에는 네 엄마도 끼어있었지. 네 엄마는 라스코 교수와의 대화 이후, 한국에 돌아가서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관한 평론을 모조리 찾아보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네 엄마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 영화를 다룬 내 동영상을 보여주었던 게지. 그 동영상을 본 네 엄마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단다.
“이 동영상, 한경님이 올린 거예요?”
갑자기 온 메시지에 당황했었단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는 느낌이 들었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딱 봐도 우리 학교 앞 호수에, 목소리는 한경님 목소리인데 어떻게 몰라요.”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이었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긴 하네요.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긴 하겠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에 나는 숨을 죽여 네 엄마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지. 어떤 말을 네 엄마가 할지 계속 상상했어. 나는 머릿속으로 네 엄마가 질문을 하면 내가 거기에 대해 로맨틱한 답변을 하는 상상을 계속했단다. 네 엄마가 이 동영상을 만들면서 자기 생각이 났냐고 물으면 난 그렇다고 말하는 상상. 아니면 네 엄마가 자신의 결함이라고 느꼈던 느닷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면, 내 생각을 환기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오히려 좋다고 말하는 상상. 하지만 네 엄마는 정말 로맨틱한 답변이라곤 전혀 할 수 없는 질문을 내게 던졌지.
“앞으로도 계속 유튜브 활동 하실 거에요?”
그 질문을 받고서는 머리가 멍했단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남겼지.
“유튜브 계속 하실 거면 같이 해요. 조회수가 이렇게 좋으면 유튜브 계속하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은데요? 유학 중에는 이런 컨셉으로 계속 밀고 가면서 채널 키우다가, 한국 돌아가면 단편 영화 같은 걸 찍어서 올리는 채널로도 쓰는 거예요.”
그 당시 네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나중에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있느냐 없느냐였단다. 네 엄마의 제안을 듣고 고민하다가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해보자고 했지.
그날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네 엄마는 정말 적극적이었단다.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보여주면서 영화 내용을 통해 위로를 전하는 컨셉은 정말 괜찮은 컨셉인 것 같다고. 다음 동영상은 시기상으로 어떤 영화를 소개하면 조회수가 잘 나올 수 있을지, 그 영화를 설명하는 배경으로는 어떤 풍경을 같이 촬영하는 게 어울릴지 등에 대한 후보를 모두 정해왔었지. 그러면서 썸네일 글씨체는 그게 뭐냐고 나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단다. 난 망설이다가 본격적인 유튜버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답했지.
“왜요? 공항에서 그런 말 했었잖아요. 최신의 수요에 알맞게 참신한 콘텐츠를 뽑아내면 한국에서 먹고 살 방법도 생기지 않겠냐고. 그때는 엄청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이 영상 보니까 가능하겠단 생각도 들던데요?”
사실 난 네 엄마가 만들자는 영상이 또다시 흥행할 거란 생각은 안했단다. 난 그저 운이 따른 거라고 생각했고, 다음번에는 그럴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단다. 다만 네 엄마랑 몇 번이라도 더 만나서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네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보자고 했단다. 그러자 네 엄마는 심심풀이 심작가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 그래서 심심풀이로 만들어서 심심풀이 심작가라고 썼다고 말했단다.
“아니, 그렇게 대충 지으면 어떻게 해요! 그냥 이렇게 하기로 해요. 심심풀이로 봤던 영화를 통해서 위로받은 경험을 전달하는 영상을 만드니까 심심풀이 심작가라고. 그리고 위로를 전하는 일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세상이라서 영어 이름이 Shim, the nuts라고!”
네 엄마의 말투는 이렇게 바보스러운 사람은 처음 본다는 말투였지만, 눈은 반짝이는 것 같았지. 그때 눈이 반짝인 게 유튜브 채널이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나랑 간만에 대화하는 게 좋아서였는지는 확실하지는 않구나. 물론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네 엄마는 당연히 유튜브 채널이 잘 될 줄 알아서 그런 눈빛이었다고 말했지만 말이야, 난 그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단다.
그 유튜브 촬영 이유로 우리는 이곳저곳 풍경 좋은 곳들에 많이 가게 되었지. 덕분에 네 엄마와 좋은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단다. 유튜브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잘 되었단다. 아주 대단한 인지도를 가진 채널이 되지는 못했더라도, 한국의 시네필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 채널이 되었지. 그 유튜브 활동이 네 엄마는 제작자 겸 감독으로 나는 각본가 겸 감독으로 둘이 서로 협업하며 공동작업을 하게 된 첫 번째 일이었던 것 같구나.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각별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공동작업자가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