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방학이 지나고 1월이 절반 정도 지나서 개강하게 되자 네 엄마는 돌아왔지. 네 엄마가 돌아오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 공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었단다. 그날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이야. 수업이 끝나자마자 네 엄마에게 다가가서 그런 사과를 건넸지. 그런데 네 엄마는 왜 그런 일에 사과하느냐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이며 말했단다.
“기분이 나쁘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으로 돌아가실 생각인데 한국에 가봤자 실패할 거라는 말처럼 들렸을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 그런 의미를 담아낸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서는 냉랭하게 돌아서서 도서관으로 향했단다. 그리고 나와 네 엄마는 수업이 끝나고 밥을 같이 먹거나 하지는 않는, 같은 나라 출신의 유학생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서로 대화하지 않는 관계가 되었지. 우리는 그저 공부하며 오가다가 눈인사를 하는 정도였단다. 그리고 나의 일상은 그 이전처럼 단조롭게 기숙사-강의실-도서관-아르바이트 일터를 오가는 것이었지. 일상이 바뀐 게 있다면 네 엄마였단다.
네 엄마는 겨울방학에 서울에 갔다가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어떤 남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중이었어. 그 남자도 유학생이었지. 그리고 그 남자의 학교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주변이었어. 그래서 네 엄마가 다운타운으로 종종 향하곤 했는데,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화장을 하고 한껏 치장한 상태였단다. 그래서 네 엄마를 본 모든 사람이 놀라곤 했지. 네 엄마가 그렇게 꾸미고서 외출을 한다는 사실에 말이야.
그 남자와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많은 경우, 그 남자가 자신의 차로 네 엄마를 학교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주곤 했단다. 그래서 그의 얼굴을 보곤 했었지. 무언가 고생하지 않은 티가 나는, 말끔한 얼굴이었단다. 네 엄마가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 한구석이 절망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단다. 그때에서야 깨달았지. 나는 네 엄마에게 완벽히 반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캠퍼스 앞에 있는 호숫가에 나가서 산책하는 일뿐이었지. 호수의 잔잔하고 고요한 물, 그 위를 떠다니는 수상 식물들의 초록빛, 그리고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그 모든 것이 나의 쓰린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지. 그래서 거의 매일 그곳을 찾아 한참을 쏘다니고서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단다. 그랬더니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지. 이제는 한경을 찾으려면 전화가 필요 없다고. 일단은 도서관에 가보고 없으면, 호숫가에 한 번 나가보면 된다고 말이야. 그렇지만 정작 다들 나를 부를 일이 있으면 소셜미디어 메신저로 연락을 하더구나. 네 엄마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야.
네 엄마가 호숫가에 가서 나를 찾은 건 학기가 절반 정도 흘렀을 무렵이었단다. 술에 가득 취한 상태였어. 평소에 우리가 그랬듯이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려고 했단다. 그런데 네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불러세웠지. 고르지 못한 숨을 쉬고 있었단다. 우리의 사이에는 오로지 그 고르지 못한 거친 숨소리만이 있었단다. 그러다가 먼저 입을 뗀 건 네 엄마였지.
“내가 이것저것 질문하는 게 그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는 거예요?”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생각해야 하는 재미난 질문을 듣고 고민해서 대답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요. 그런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 말을 듣고 네 엄마는 눈물을 터뜨렸단다. 당황스러웠지.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단다. 그러나 네 엄마는 대답이 없었어. 그러다가 네 엄마는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지.
“나는요, 한경님이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면 해요. 집안 배경이고 이런 건 정말 상관없더라도 말이에요. 사람들이 탈출하고 싶다고 말하는 한국으로 왜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그 말을 하고선 네 엄마는 바로 뒤돌아서 학교로 향했단다. 무슨 말인지는 알 듯했으나, 네 엄마를 잡을 수는 없었지. 그저 마음이 뾰족한 창에 찔린 것처럼 아플 뿐이었지. 나는 내 아버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으나 위로를 전하지 못했던 것처럼, 울고 있던 나의 사랑 네 엄마에게도 위로의 말을 하지 못했었어. 그리고 그런 작고 하찮은 존재가 나라는 사실이 슬펐단다.
네 엄마는 나중에서야 그런 이야기를 했지. 그 당시에 했던 네 엄마가 했던 내가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다는 고민이 정말 불필요한 고민이었다고 말이야. 하지만 네 엄마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너를 낳고도 7~8년이 지난 후였단다. 네 엄마는 당시의 그 고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지. 네 엄마의 어머니, 그러니까 너에게는 외할머니가 네 엄마에게 항상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네 외할아버지에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씀하셨대.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 후 연구원으로 생활하는 동안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야. 그래서 자신도 미래의 배우자에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했대.
어쨌든 우리가 결혼할 무렵에는 이미 우리는 고국을 잃은 난민이 되었고,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금방 생겨났지. 너에게는 정말 의아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버틸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너란다. 네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너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란다. 꼭 부모가 성공했던 방식대로 흘러가야지만 인생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었단다.
그렇지만 나중에 생각할 때 불필요한 고민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자신에게 불필요한 고민은 아닌 거란다. 그 당시의 자신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 그리고 그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말이야. 참 우습게도 네 엄마의 고민은 우리 둘에게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가 되었고, 우리를 오히려 더 결속하도록 만들어주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