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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공항에서의 밤

네 엄마와 나는 버스가 끊긴 것을 보고서는 한숨을 쉬고 털레털레 공항 의자에 앉았지. 갑작스러운 기상이변과 비행기 결항인지라 공항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어. 우리는 그러면서 미국에 관한 악담을 해댔단다. 한국에서는 겨우 이 정도 폭우에 대중교통이 끊기면 시장이 탄핵될 거라고. 미국 사회는 정말 공공서비스가 엉망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사실이란다. 물론 그날의 폭우가 예상치 못하게 급작스럽기도 했고, 정말 많은 양이 쏟아져 내린 것은 맞지만 말이다, 한국은 그 정도 비가 내린다고 대중교통이 끊기는 나라가 아니었단다.

그러다가 네 엄마는 갑자기 웃었지. 오늘 기숙사를 나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는 몰랐다고. 난 또 이런 상황에서 웃고 있는 네 엄마가 한편으로는 신기해서 쳐다보았단다. 그랬더니 네 엄마는 또다시 말했지. 한경님과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나눌 줄도 기숙사를 나설 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고, 그냥 영화만 좋아하시는 분인지 알았다고. 그에 대해 대답했지.

“저는 한담을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바쁠 때는 사실관계만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한가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기자신에 대해서 말하길 좋아하더라고요. 우리가 학기 중에 바쁠 때만 만났잖아요.”

그런 말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그러고도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너는 아직 평생을 우리 품에서 자라나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향을 떠나 쓰는 언어도 다른 곳에 정착하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있단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괜한 친밀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하지. 정작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말이야.

네 엄마는 나에게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고 했지. 말이 많지는 않은 편이라서 생각이 많지는 않은 편인지 알았대. 그래서 대답했지. 말을 많이 하면 오히려 숙고한 후, 말할 시간은 모자라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네 엄마는 그렇기도 하냐고 되물었어. 그래서 대답했어, 나라면 오늘 오는 길에 그렇게 직접적으로 라스코 교수의 성적 처리에 대한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나의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것일지를 고민해보고 그만두었을 거라고.

“저는 라스코 교수가 불평등을 옹호하는 듯이 말하는 태도에 화가 났던 건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정말로 그것뿐이에요?”

그 말을 듣자 너희 엄마는 그 동그란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되물었지.

“저는 어떠한 감정이 저에게 찾아올 때에 그 감정이 왜 나에게 찾아왔는지를 고민해보는 편인 것 같아요.”

“저는 라스코 교수가 불평등을 옹호하는 듯이 말하는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라니까요.”

“아까 말씀을 들어보면, 라스코 교수의 정확한 말은 평등을 절대적인 선으로 상정하고 그 뒤에 숨어서 지혜를 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니체가 경멸했다는 것 아니었나요? 평등을 절대적인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불평등을 선으로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는 것 같아서요.”

네 엄마는 그 말을 듣고는 멍하니 나를 쳐다봤지. 그래서 말을 잠시 쉬며 네 엄마가 반응하기를 기다렸으나 반응이 없었단다. 그래서 나 홀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지.

“그렇다면 그러한 논리적인 비약을 하게 된 데에는 일종의 트리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에 그러한 상황에 그 말에 대해서 감정이 공격적으로 반응할 때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첫째, 평등이 절대적인 선이 아니라는 발언이 감정을 자극한 경우, 그리고 둘째 그 말을 통해 라스코 교수가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감정을 자극한 경우.”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네 엄마의 반응을 살펴보았지. 네 엄마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단다. 무언가가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한 파편을 마주한 듯한 얼굴이었지. 이내 네 엄마는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을 요구했단다, 잘 모르겠다고 다시 설명해줄 수 있냐고.

“그러니까 제 말은 주은님이 그 말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볼 수 있단 말입니다. 첫번째는 주은님의 과거의 사건들로 인하여 평등을 절대선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라스코 교수의 말이 주은님의 감정을 건드렸던 경우입니다. 그런데 주은님처럼 밝고 쾌활한 분이 어두운 과거의 속마음을 숨기고 살지는 않으실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나는 네 엄마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었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 전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어. 밝은 에너지를 바깥으로 분출할 수 있다고 해서 내면의 어두움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네 엄마의 영화 취향만 생각해봐도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을 알았을텐데……. 어찌 되었건 나는 그날 그렇게 실없이 네 엄마를 내면의 어두움이 없는 사람으로 넘겨짚는 말을 했단다. 그 말을 들은 네 엄마의 표정은 멍해보였지. 그래서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지.

“그렇다면 결국 두 번째 경우의 수가 주은님이 라스코 교수의 말에 화가 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라스코 교수는 결국 그 말을 통해서 아무리 학생들이 주은님의 발표에 더 많은 감탄을 했었더라도, 주은님의 발표에 제 발표와 같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메시지가 주은님의 기분을 나쁘게 한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혼자 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네 엄마는 짜증이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는 나에게 쏘아붙였지.

“아니, 그걸 왜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거죠?”

“말씀드렸듯이 왜 그렇게 라스코 교수의 그 말에 대해서 논리적 비약을 일으키면서 비난할 만큼 감정이 자극된 이유를 찾아보고자 했기 때문이죠.”

“아뇨, 저 한경님이 A+을 받은 건 이해가 가고요, 저보다 더 발표를 잘했다고 채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만, 저는 다른 A를 맞은 친구들보다는 훨씬 더 나은 발표를 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그 근거로 다른 대학원생들이 제 발표를 칭찬했다고 말한 것뿐이에요.”

네 엄마의 말을 들은 나는 당황했지.

“그런가요?”

“네. 라스코 교수님 앞에서 한경님 성적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걸요. 오로지 제 점수에 대해서만 말했어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단다. 네 엄마에게 사과했지. 오해했다면 미안하다고 말이야. 그리고서는 난 왜 착각을 했던 것인가 하며 혼자 내 마음을 곱씹었지. 내 낯빛이 어두워지는 듯하자, 네 엄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단다. 그 눈을 보고서 더이상 걱정시키기 싫어서 나는 입을 떼고 말하기 시작했지.

“남의 마음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말 저 말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 저는 제 마음도 온전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인가봐요.”

네 엄마는 놀라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나에게 되물었단다.

“아까의 그 오해 말이에요. 생각해보니까 저에게 라스코 교수 수업에서 저 혼자 A+였다는 게 저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했고, 많은 의미부여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은님도 A+이여야 한다고 이의신청을 했을 때, 혼자 마음속으로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저는 주은님 발표도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했는 걸요……. 그런데 나만 A+이었으면, 하는 제 욕심 좀 봐요.”

그 말을 들은 네 엄마의 표정은 누그러졌지. 그러고서는 나에게 말을 했단다. 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러면서 두 번째의 경우가 아니라 첫 번째의 경우가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

“평등이 절대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무언가 제 마음을 자극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냥 엄마와의 관계가 생각이 났어요.”

그 말을 하는 네 엄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지. 그래서 알 수 있었어. 그 말이 진실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네 엄마와 눈을 마주쳐주기로 했단다. 어떤 이야기든지 들어줄 용의가 되어있다는 인상을 주는 눈빛으로 말이다. 앞으로 인생의 반려자를 찾을 때가 되면, 내가 무슨 속 깊은 이야기를 할 때 그런 눈빛을 지어줄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할 거란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에 집에 데리고 온 그 애는 아닌 것 같아.

“여자들은, 아니,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애들은 자라나면서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을 받고 자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너는 딸이 되어서 그런 것도 이해 못해주니’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요. 어떤 심리학자는 그것을 ‘감정적 샴쌍둥이가 되기를 요구받는다’는 표현도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하려고 들지를 않는걸요. 원하는 건 없다면서도 은근슬쩍 내비치는 욕망들은 많고…… 어제랑 오늘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하고……. 일방적인 관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 관계에 저항했었죠. 지난번 발표에서도 말했듯이요. 그러다가 엄마랑 화해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냥 저항하기를 그만둔 것 같아요. 엄마의 행동들을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하기 시작 했어서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다시 모녀 관계의 주도권을 엄마가 들고 가버렸죠. 나를 절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일방적인걸요.”

네 엄마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네 엄마의 눈이 떨리기 시작하더구나. 약간은 후회하는 것 같았어. 이런 말을 괜히 꺼냈는가 하는 기분인 것 같았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미지와 나의 어머니 사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단다. 항상 우리 엄마는 부부싸움을 하고 난 후에, 나와 미지가 집에 있으면 미지에게만큼은 온전한 이해를 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고.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어린 미지의 입장에서 엄마의 은근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서 그대로 엄마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고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엄마가 아버지가 해줄 수 없는 걸 계속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인 것 같았는데 말이야. 사실 미지도 알고 있었단다. 우리 둘이 서울에 살게 되고 엄마와 심리적으로 독립된 공간들이 생기자, 미지는 엄마와 아버지가 싸울 때 너무 혼란스럽다고, 아버지 말이 더 맞는 거 같은데 엄마 편을 들어주어야만 할 것 같아서 혼란스럽다고 말했지. 네 엄마의 눈을 보며 안정감을 주기 위해 그런 말을 했지. 그리고서는 잠시 쉬며 바깥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풍경을 살핀 후에 다시 말을 꺼냈어.

“미지가 죽은 이후, 죽음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했던 게 엄마 쪽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도 들어요. 미지가 없다면 자신은 영원히 그 누군가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죠. 사실 누군가가 한 사람의 입장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도 말이에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네 엄마의 눈빛은 안심이 된다는 듯한 느낌이었단다. 자신만이 그런 것도 아니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을 받은 듯했단다.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인간은 그렇게까지 고상한 존재가 아니란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우리의 생각보다 별로인 존재이지. 사회의 멋있는 도덕률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 그렇기에 인생의 반려자를 구할 때는 항상 자신이 별로인 지점을 보일 때, 그것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알려주는 사람을 구해야 한단다.

그런 소리는 그만 좀 하라고? 애야,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서 내가 반복해서 말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에 우리 집에 데리고 왔던 그 친구는 별로인 것 같아. 너와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보면 그렇게 너를 안심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더구나. 이건 간섭이 아니라, 충분히 아빠로서 할 수도 있는 조언인 것 같다.

어쨌든 나와 네 엄마는 그날 새벽이 되도록까지 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꽉 들어찬 공항 라운지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 우리는 그 전의 넉 달가량 알고 지낼 때보다도 훨씬 더 서로 대화가 통하는 사이임을 알게 되었지. 비가 그칠 때쯤에 나는 네 엄마에게 비어있는 벤치에 누워서 자두라고 했어. 비행기 시간이 되면 깨우겠다고.

“그럼 한경님은요? 이제 곧 날이 밝으면 대중교통 운행도 재개될텐데…….”

“저는 어차피 학교로 돌아가면 침대에 누워서 자면 돼요. 어차피 비행기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여기서 책이나 좀 읽다가 주은님 보내고 갈게요. 주은님은 몸을 누이기도 힘든 좁은 비행기 이코노미석으로 한참 갈 텐데요, 뭐. 중간에 또 환승도 있다면서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네 엄마는 고맙다고 말하고 몸을 뉘었단다. 그러면서 말했지. 나중에 한경님이랑 결혼할 사람은 완전 복 받은 사람일 거라고. 세상에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네 엄마가 아직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만 말이다. 그러고서는 나중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생각이 있냐고 물어왔지. 그래서 있다고 했지. 한국은 그 당시 결혼을 안 하겠다고 생각하던 청년층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단다. 네 엄마는 자기도 있다고 속삭이듯이 말했지. 그러고서는 내 눈을 지긋이 응시했지.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단다. 그렇지만 눈을 피하지는 않았지. 우리는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었단다.

네 엄마의 다음 질문은 졸업하고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이었단다. 그래서 아직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영화에 관련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지. 그러자 네 엄마는 벌떡 일어나서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단다.

“아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려고요?”

“네. 한국에 돌아가야죠. 그래도 부모님도 계시고 하니까요. 주은님은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시려고요?”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영화감독이 된다거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거나 그러기 어려운 것 아시죠? 2000년대에서 유명한 감독들 명단도 텐트폴 영화 주연 배우도 계속 변화하지 않고 20년간 그대로 이어오는 고인물 영화계라고요.”

“그런 면도 있죠.”

내가 아무런 눈빛의 변화 없이 이야기하자 네 엄마는 놀라서 계속 물었단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고 그 감독 그대로, 변화하지 않고 그 배우 그대로 연기를 하는데 막내 스태프들은 계속 바뀌면서 박봉으로만 일하는 업계라고요.”

“알죠.”

또다시 너희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

“그런데 왜 거기로 돌아가시려고 해요? 열정페이로 열정만 쏟아주고 호구처럼 살려고요?”

“그런 건 아니고요……. 부모님이 거기 계시니까……. 부모님 살림살이가 괜찮은 것도 아니고……. 제가 같이 살진 못하더라도, 한 번씩 방문해서 어떻게든 뭐 제가 도울 수 있는대로 도와야죠. 부모님인데요.”

“그렇다고 인생을 저당 잡혀서 사시려고요?”

너희 엄마는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단다.

“그런 건 아니고……. 새로운 세대의 감성에 맞게끔 혁신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면 어떻게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네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한경님, 한국은 젊은 세대가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고 성공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그냥 모든 게 닫혀 있는 나라라고요. 사람들이 오죽하면 전문직, 전문직만 찾아서 가겠어요? 그냥, 사람들이 성공할 기회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모두 다 자격증에 목매다는 거지.”

그 말을 듣자 나는 화가 났단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한껏 드러내며 말했지.

“그걸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겠어요?”

“현실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그 말을 듣자 나는 화가 나서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단다. 그리고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공항을 떠났지. 그렇게 우리 둘이 처음으로 함께 한 낭만적인 밤의 분위기는 모두 물거품이 된 채 끝나버렸단다. 너희 엄마는 서울에 도착해서 고마웠다고 형식적인 메시지만을 보냈지. 그리고 나도 형식적인 답변을 보냈단다. 그런 답변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린 것 같았지만, 나도 그러는 나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단다. 방학 내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네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그 날의 밤이 생각날 때면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돌려보며 네 엄마가 생각나는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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