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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비행기 결항

그렇게 학기를 마치고 나자 방학이었지. 네 엄마는 방학 동안 서울로 갔었단다. 그래서 너희 엄마의 출국 날에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러 같이 공항으로 갔었지. 나는 학교에 계속 남아있기로 했기에, 한국으로 출국하지는 않았단다. 부모님과 약속했었거든. 유학을 한 번 오면, 아예 유학이 끝날 때까지 돌아가지 않기로. 유학 기간에는 다른 생각 안 하고 열심히 공부만 하기로 약속했었어. 그래야 비행기값도 아낄 수 있고 말이야. 없는 돈 쪼개서 생활하는 거였기 때문에 비행기값조차도 아주 아까웠단다. 그래도 공항에 짐을 옮기러 같이 갔던 것은 아무래도 같은 유학생 처지여서였어. 우리 같은 평범한 유학생들은 차가 없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단다. 그래서 공항에 갈 때는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줄 친구가 필요하기도 했지. 그때까지는 우리의 관계가 우정에 더 가까웠단다. 아무리 너희 엄마가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 나에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날 너희 엄마는 라스코 교수에 대한 온갖 악평을 했단다. 라스코 교수는 니체를 읽기 전에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고. 그가 고전에 빠져 살아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나.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사회에서 살면서 어떻게 인간이 불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그렇게 온갖 악평을 신랄하게 했었단다. 뭐……. 네가 상상하기 어려운 네 엄마의 옛날 모습들도 있단다. 나는 그 말들을 묵묵히 듣고 있었지. 그러면서 그 말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어. 결국에는 내가 자기보다 성적이 잘 나온 게 말이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었거든. 물론, 너희 엄마는 그저 라스코 교수를 욕한 것이었지만 말이야. 우린 서로에 대해서 지금처럼 깊이 알지 못했었어.

그런데 그날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단다. 아니, 뭐, 우리 가족의 탄생으로 이야기하자면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겠지. 티켓 창구로 향하니까 안개로 인하여 비행기 운항이 지연되고 있다고, 조금 있다가 방송이 나오면 비행기 티켓을 찾으러 오라고 하더구나.

“한경님, 먼저 가셔도 괜찮아요.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서도 짐을 옮길 수 있어요.”

그런데 괜히 기숙사로 돌아가기는 싫었단다. 한국인 유학생들 대다수가 이미 출국을 한 상태였어서, 학교로 돌아가면 한국어로 대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 그리고 말이다, 사실 내가 너희 엄마한테 마음이 조금은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나. 시간이 많다고, 괜찮다고 같이 기다려주겠다고 말했지.

“어머, 고맙네요. 왠지 공항에서 이 많은 짐을 두고 혼자 오래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면 괜히 심심하고, 나중에 짐 챙길 때도 번거로울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서는 묻더구나. 방학 때는 무엇을 할 거냐고. 그래서 학교에서 할 일이라곤 책 좀 읽고 영화를 보는 일뿐일 거라고 했지. 잠깐 한국에서 부모님이 방문하기로 했으니 그때에야 말리부의 해변에 가볼 것 같다고, 부모님이 바다를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너희 엄마는 무슨 책을 읽으려고 하냐고 물었지. 그래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지. 그러자 묻더구나, 왜 그렇게 오래된 책을 읽으려고 하냐고.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있다는 라스코 교수의 말만큼은 동의를 하는 편이에요. 이번 학기 발표 때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말했는데요, 결국 마음을 얼마나 건드리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자신이 추구했던 의미의 세계에 던지는 충격이 큰 것을 의미한달까요……. 그런데 제가 여태껏 읽어본 사회과학 서적 중에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어낸 서적은 그 책인 것 같아서요.”

“그런데 사회과학계에 대해서 잘은 모르는데, 마르크스가 진보 쪽이고 막스 베버가 보수 쪽 아니었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단다. 그러자 너희 엄마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달라고 물었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호기심이 넘치는 눈빛이여서 당황했단다.

“일부 극단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면 죄다 보수라고 몰고 가는 경향도 가끔 있긴 해요. 그런데 막스 베버가 불평등에 대해서 정당화한다거나 그런 담론을 펼쳤던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마르크스가 물질적인 것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관계를 사회적 관계의 기초로 두고 사회를 보았다면, 막스 베버는 인간을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로 보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인 것이 창출된다고 보았던 것 같아요.”

너희 엄마는 그 말을 듣고서는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았지.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그래서 나는 삼촌들이 기자라서 사회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가, 대학을 진학할 때에 사회학과에 진학했었다고 말했지.

“그러면 마르크스주의자랑 막스 베버를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사이가 안 좋나요?”

네 엄마는 정말 궁금한 눈빛으로 그런 질문을 했단다. 충분히 궁금할 수 있지만, 누구도 나에게 질문해보지 않았던 순수한 호기심의 물음들에 나는 당황했었지. 그러나 이내 정신을 되찾고 대답을 했단다.

“아까도 말했듯이 일부 극단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계열이 아니면 죄다 보수라고 몰고가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과학 기반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지는 않은 일부 운동권 쪽 친구들이 그러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학술적인 영역에서는 관점이 다를 뿐 서로 사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마르크스의 이론과 베버의 이론을 함께 수용해서 융합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도 많고요.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죠.”

너희 엄마는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았지.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었지. 알다시피 너희 엄마는 공과대학을 나왔지 않니. 카이스트라는 학교에는 사회과학대 자체가 없었단다. 그러더니 다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지. 너희 엄마가 아니라면 거의 듣지 못할 질문이었단다.

“사회학과에서 마르크스를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과 막스 베버를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의 차이가 있나요?”

“음……. 생각을 해보면 MBTI로 따질 때, T냐 F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T냐 F냐를 따지는 경우, 이성적이냐 감정적이냐로 말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반만 맞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T는 객관적인 세계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고, F는 인간의 의미세계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T는 마르크스 쪽, F는 베버 쪽을 선호하게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T가 객관적인 세계, F가 의미세계를 좋아한다고요? 뭔가 처음 듣는 해석이긴 한데, 재미난 말인 것 같아요. 저는 T인데 객관적인 사실들에 더 관심이 많거든요! 마르크스 쪽은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물질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이고, 베버 쪽은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지에 관심이 많은 것이로군요.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한경님, 진짜 설명 잘하신다!”

네 엄마의 칭찬은 정말 기분 좋게 해주었지. 너희 엄마가 궁금한 것이 해결될 때에 하는 칭찬은 항상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어. 정말 순수한 지적인 호기심이 충족되어서 기분이 좋다는 게 느껴지거든.

“아까 말한 T와 F의 차이는 그냥 제 개인 의견입니다. 저는 그냥 혼자 온갖 것을 다 생각하는 일을 즐겨 하거든요.”

너희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꺄르르 웃었지. 자기는 온갖 것을 질문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네 엄마가 그렇게 말하고 나자 갑자기 천둥이 쳤단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본 것은 그때였지. 비가 퍼붓고 있었어. 그렇게 우리가 대화에 열중했던 사이, 바깥에서는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던 거지. 우리 둘은 깜짝 놀라서 밖을 계속 보았지.

곧, 공항에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지.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비행기 편이 결항되고 있으니 승객들은 자신의 비행기 상태에 대해서 확인하라는 방송이 나왔어. 몇몇 사람들은 공항 바깥으로 향하는 것 같았단다. 우리는 멀뚱히 눈을 깜박이며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지. 그랬더니 얼마 안 가 네 엄마의 비행기 편이 결항되었다는 안내 메시지가 네 엄마 핸드폰으로 오더구나.

“아이고,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으실텐데 쓸쓸하시겠네요. 가족 분들도 섭섭하시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네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 핸드폰으로 빠르게 비행기 결항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검색하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검색이 끝나자, 아, 엄마가 이미 장을 봐둔 후라서 수산물이 원래는 싱싱했는데 나를 기다리다가 신선도가 떨어졌다고 불평하시겠네요, 라고 아무 감정 없이 말했지.

“역시 T야. 모든 걸 물리적인 사실관계로 접근해.”

내가 그렇게 말을 하자 네 엄마는 폭소했지. 한동안 폭소를 한 후에 네 엄마는 나에게 MBTI 과몰입이 아니냐고 물었지. 자신은 MBTI를 그저 재미난 대화 주제 정도로만 생각한다고. 그저 유사과학의 한 종류가 아니냐고. 그래서 MBTI의 창시자들도 MBTI를 과학적 외형으로 만들지 않았는데, 왜 유사과학이냐고 네 엄마에게 되물어보았지.

“어떤 자의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하나의 진리처럼 말해진다면 그건 유사과학 아닌가요? 저는 반증가능성이 없는 것을 두고, 정당한 지식인 것처럼 다루는 것을 볼 때, 사실 왜 그걸 저렇게까지 신뢰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한경님은 정말로 MBTI를 믿으시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짐짓 가만히 있었지. 생각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란다. 네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는 나를 쳐다보았지. 그 눈빛에는 약간은 두려운 듯한 감정이 숨어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최대한 빨리 대답을 주었지, 물론 너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그건 한참을 생각한 것이라고 말하겠지.

지나친 과학주의에도 오류와 함정이 있다는 말을 했단다. 반증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반증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만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으려면,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생산되는 지식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장 그것의 기반으로써 ‘어떠한 명제가 지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의 반증 가능성은 무엇인지를 말할 수가 없다고.

사람들의 의미 세계에 대한 지식은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지식과는 정말 다른 것 같다고 말했지. 내가 앞서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뒤돌아서 다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내 행동의 이유가 실제 행동할 때 생각했던 것이랑 정말 달랐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러한 차이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걸, 무의식이라고 표현하든, 잠재의식이라고 표현하든, 아니면 트라우마라고 표현하든,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라고 느끼게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객관적 증명이 가능한 경험적 데이터로 만들어낼 것이며, 거기에 대한 반례의 가능성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이냐고. 네 엄마는 그 말을 듣고는 안심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단다.

“아, 엄청 곰곰이 생각하시는 타입이셨군요. 저도 제 속마음을 잘 모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진짜 단순히 궁금해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이 시비 거는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서요. 저는 한경님이 곰곰이 생각하시는 모습을 보고 혹시 기분이 나쁘셨나해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오히려 재미있었는 걸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서 대답할 때 저는 쾌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 말을 듣자 네 엄마의 표정은 갑자기 미소가 솟아올랐단다. 급작스레 드러난 해맑은 미소에 갑자기 내 마음이 확 불 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났지. 갑자기 네 엄마의 환한 미소가 장작이 되어서 내 마음 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단다. 갑작스러운 마음의 기류에 나 자신도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았지. 그러자 네 엄마는 깜박할 뻔했다고 크게 외쳤단다. 빨리 비행기 표를 교환하러 항공사 창구로 다시 가야 한다고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항공사 창구로 갔었지. 결국 그곳에서 비행기 표를 교환했는데, 다음날의 아침 비행기였지. 우리는 다시 학교로 향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 쪽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폭우로 인하여 대중교통도 모두 정지된 상태였어.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 갇혔어. 물론 그 덕에 16살의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단다. 인생이란 참 재미난 아이러니의 연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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