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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이의신청

내 발표가 끝나자마자 다들 발표에 대하여 칭찬했었단다. 그리고 스스로도 뿌듯했지.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그 발표 날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단다. 내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했었지. 거의 마지막쯤에 네 엄마가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네 엄마가 얼마나 독종인지, 그 학기 기말 레포트 하나에 너에게는 아직까지도 말하지 않는 자신의 과거사를 모조리 꺼냈단다. 그리고 그걸 「레이니 데이 인 뉴욕」과 연결 지어서 말했지.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들 모두가 감탄을 내둘렀단다. 진짜로 대단한 스토리를 너희 엄마는 말했었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렴.

발표가 끝나고, 같이 수업을 마친 학생들끼리 조그마한 파티를 열었지. 세상이 1등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는 거 알지. 발표 수업을 마친 후에 대화의 주제가 된 것은 너희 엄마의 발표뿐이었단다. 물론 내 이야기도 가끔 언급되곤 했지만, 그날의 발표 수업에 대해서 말할 땐 너희 엄마의 발표가 메인 주제였지. 너희 엄마는 굉장히 으쓱한 기분으로 그런 칭찬을 응수했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 너희 엄마는 지금은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으면 오히려 자신이 오만해지는 것을 많이 경계하곤 하지 않니? 그러나 그날의 엄마는 아직까지는 지금의 엄마처럼 성숙해지기 전이었단다. 사람들이 칭찬하자 기분 좋아하며 약간의 자만심마저 내비치기도 했지.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그날의 진짜 1등은 너희 엄마가 아니었단다. 나였지. 나만 그 수업에서 A+를 받았어. 그리고 너희 엄마는 그냥 A였지. 너희 엄마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단다. 그래서 이의신청을 했었어. 라스코 교수와 면담을 진행했었지. 너희 엄마가 라스코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갔을 때, 라스코 교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 라스코 교수는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교수였단다. 그래서 세상이 변한 것과는 무관하게 종종 자신의 연구실에서 담배를 태우곤 해서 악명이 높았었어.

“그래, 주은! 성적에 이의가 있다고.”

라스코 교수가 네 엄마를 보자 담뱃불을 끄며 말을 걸었지. 네 엄마는 최대한 똑부러지게 말하겠다고 생각하고, 자세를 가다듬은 후 말을 시작했어.

“네. 아무래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수업에 참여한 모두가 다 같이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발표가 최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 우리끼리 열었던 자그마한 파티에서도 저의 발표가 가장 많이 회자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A+가 아니라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다른 많은 학생들이 제 발표를 최고로 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과 비슷한 점수인 A를 맞았다는 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수업에서 평가를 내리는 사람은 저입니다. 다른 동료들이 아니라요. 주은에게 A+를 주지 않은 것은 서사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고 말하기엔 다소 부족해 보여서입니다.”

“왜 그렇나요? 교수님께서는 서사의 본질이 변화라고 하셨습니다. 서사란 주인공이 A가 A’로 변화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며, 주인공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영화의 주인공인 개츠비가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저의 서사와 연결을 시켰습니다.”

“주은,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개츠비의 어머니가 개츠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대사요. 그 대사를 통해 주인공인 개츠비가 변화해요. 그래서 저는 그 대사와 저와 저희 어머니의 일화를 똑같이 배치하여서 과제물을 작성하였습니다.”

라스코 교수는 그 말을 듣고서는 네 엄마를 한참 빤히 쳐다보았지. 그래서 네 엄마는 속으로 기뻤다고 했어. 자신이 똑바로 말하자 교수가 당황해서 쳐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교수는 네 엄마를 한참을 빤히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한 대를 태우며 허공을 바라보다가 말했지. 네 엄마가 틀렸다고.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개츠비와 챈이 같이 미술관에서 나들이를 하다가 챈이 지나가듯이 말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지만, 운명적 상대를 만나기만 하면 한 번으로도 충분해’라는 대사라고.

“왜 그렇나요? 그 대사는 서사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 배치되었는 걸요.”

“서사는 변화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분명히 말했고, 주은도 그것을 인지했죠. 그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개츠비에게 바뀐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엄마와의 관계입니다. 그로 인해서 연애 상대가 바뀌게 되죠.”

라스코 교수는 다시 다른 담배 가치를 꺼내문 후, 너희 엄마를 한동안 빤히 지켜보았지. 눈을 끔벅끔벅했단다. 네 엄마는 그때도 자신이 논쟁을 통해 라스코 교수를 설득했다고 생각했지.

“영화는 장면을 통해서 모든 것을 표현해내야 하는 장르입니다. 우디 엘런 감독이 말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감독으로서 영화적인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큼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죠. 장면을 통해서만 생각하세요. 어떤 것이 바뀌었나요?”

“……연애 상대입니다. 교수님, 그러나 그것은 해석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수업을 들은 동료들 모두가 저의 해석에 대해서 칭찬했었죠. 사람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에서 해석의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라스코 교수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단다. 그러더니 읊조렸지.

“우리는 우리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복수하고 욕을 퍼부으려 하지. 평등을 추구하는 의지 – 이것이 이제 덕을 일컫는 이름이 되어야 한다. 힘을 갖고 있는 자 모두에 반대하며 우리는 목청을 높이리라. 이렇게 타란툴라의 심보는 다짐한다.”

너희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스코 교수를 쳐다보았단다. 그런 너희 엄마를 보더니 라스코 교수는 물었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았냐고. 너희 엄마는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쫓아가는 것도 벅차서 고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단다.

“고전이 고전인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전을 계속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에도 이유가 있겠고요. 니체가 그 책에서 가장 경멸했던 부류가 평등을 절대적인 선으로 상정하고, 평등 뒤에 숨어서 자신의 지혜를 기르는 일을 거부한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은 너희 엄마는 즉각적으로 반발했지.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먼저 인정되어야 하는 이상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면 시민 혁명은 왜 일어났겠으며, 왜 사람들이 신분제를 폐지했겠느냐고. 너희 엄마가 나중에서야 회고하길 그날 라스코 교수에게 조금 무례하게까지 말했다고 하더구나.

“주은. 당신은 나에게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입니까? 아니면 학위를 따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온 것입니까? 단순히 종이 쪼가리가 필요한 거라면 당신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학위장, 그런 건 커리어 초창기에나 조금 쓸 데 있지, 제대로 된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면의 지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네 엄마는 설명을 요구했지. 그랬더니 라스코 교수는 자신에게서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면 자신의 평가 기준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지. 단순히 많은 사람에게서 감탄을 받았다고 해서 더 좋은 것이 아니라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그러니 자신의 평가가 기준이며, 다른 학생들이 네 엄마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자신의 평가와 같은 비중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도 네 엄마가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라스코 교수는 말했지.

“나는 학생들이 감탄했던 요소가 주은 당신의 서사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결부시켜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폭주족 청년과의 일탈 같은 만남, 그리고 어머님에게 반항해 보이기 위해 주은 스스로 했던 일들에 대해 말할 때, 그 순간 열광하고 재미있어하던 학생들의 눈이었습니다. 주은 당신의 서사에 대한 이해였다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네 엄마는 납득은 안 가지만 이해는 간다고 답했지. 그리고서는 라스코 교수의 연구실을 빠져나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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