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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첫 학기의 기말 과제

네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은 첫 학기에 ‘영화 서사의 해석’ 수업을 들으면서였단다. 같은 수업을 들은 유일한 한국인이었기에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각자가 이해한 수업 내용을 서로 공유하곤 했지. 유학 첫 학기에는 수업의 모든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단다. 그래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저녁을 먹으며 각자가 이해한 바를 전부 이야기하고 또 수업 내용에 대해 토의도 해보고 했어.

그 수업에서 받은 기말 과제는 ‘나의 인생과 관련이 깊은 영화 서사를 해석해보기’였단다. 나는 그 과제를 듣고 한참을 고민했었지. 왜냐하면, 생각 나는 게 「애스터로이드 시티」밖에 없었거든. 따지고 보면 내가 유학길에 오른 것도 그 영화 때문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영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레포트를 쓸 자신이 없더구나.

수업이 끝난 후 네 엄마와 둘이 학교 앞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다가 어떤 영화로 과제를 할지 네 엄마에게 물었지. 그랬더니 네 엄마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라는 영화를 하겠다고 했어. 네 엄마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하겠다고 해서 의외였단다. 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난 그때까지도 네 엄마가 로맨스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늘 수수하게 다니고, 남자든 여자든 언제나 똑같은 매너로 대했거든. 수업 초기에는 같은 과정에 등록한 유일한 한국인이니까 잘해볼까 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단다. 그런데 정말 연애라곤 관심이 없는듯한 모습을 보고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기로 했지.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니! 그래서 웬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냐고 질문을 했지.

“한경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보셨어요?”

“아뇨. 저는 저보다 잘생긴 사람 나오는 영화 안 봐요. 티모시 샬라메, 너무 잘 생겨서 질투가 나잖아요!”

“그럼 한경님은 볼 영화가 없을텐데!”

“아니……. 아까 건 장난이고, 사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잘 안 봐요.”

네 엄마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사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처럼 보이지만, 아주 음울한 영화라고 말했단다. 남자 주인공 개츠비는 엄마와의 불화로 고통스러운 청춘을 보내지. 그는 자기가 살던 뉴욕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립대학에 다니면서 세상 사람들 모두를 아니꼽게 보지. 그런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밝고 예쁜 여자친구와의 연애였어. 개츠비의 여자친구는 중서부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자랐어.

반면에, 개츠비는 세계의 모든 욕망의 집결지인 뉴욕시에서 자라났고, 그곳은 개츠비의 말과 같이 “불안감, 적대감, 불신”의 도시이지. 개츠비는 주말을 맞아 여자친구의 출장을 따라서 뉴욕에 가면서 데이트를 할 생각을 한단다. 그러나 학보사 기자였던 개츠비의 여자친구는 인터뷰하다가 뉴욕 사람들의 온갖 욕망들을 마주하고서는, 계속 이끌리지. 왜냐하면 개츠비의 여자친구는 처음 마주하는 수준의 욕망들 앞에서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가지고 상대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야.

개츠비의 여자친구가 처음 만나는 이들의 욕망에 의해 이리저리 이끌리는 동안 개츠비는 절망스러워하다가, 옛 여자친구의 동생인 챈을 만나지. 챈과 개츠비는 “불안감, 적대감, 불신”에 가득한 듯이 서로의 행동을 비꼬아 말하면서도 서로에게 친근감과 호감을 표시하지. 그렇게 챈과의 나들이를 마치고도 개츠비는 여자친구와 연락을 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개츠비는 우연히 만난 매춘부를 여자친구라고 속이고 집에 방문하지.

하지만 개츠비의 어머니는 이를 알아차리시고 매춘부를 집에서 내보낸 후에 개츠비와 대화를 하지. 왜 이렇게 속을 썩이냐고 묻자, 개츠비는 온갖 고급적인 문화적 취향을 가진 가족인 척하려고 사람을 옥죄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그러자 개츠비의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했어. 자신은 중서부에서 와서 생계가 어려운 때에 매춘부일을 했었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그런 과거와 멀어지기 위해서 고급문화 취향을 가진 가족이 되려고 했는데, 그런 이유로 너를 힘들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했지.

다음날, 개츠비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단다. 여자친구에게 우리는 서로 다른 종인 것 같은데, 왜 만나냐고 하지. 이제는 여자친구의 순진함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 거야. 어머니의 사연을 알고,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자기 자신이 가진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인정하고 순진무구해보이는 여자친구에게 더이상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거란다. 대신에 영화의 마지막에서, 개츠비는 챈과 만나 키스를 하지.

“예고편에 보였던 것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였군요. 그런데 주은님이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친절하시기만 한걸요!”

샌드위치를 먹으며 네 엄마가 말해주는 영화 이야기를 듣다가, 약간은 놀라며 물었지. 네 엄마는 요즘도 그렇지만, 정말로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남에게 적대감이나 불신을 드러내지 않는단다. 뭐, 네가 말했듯 나도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지만.

“한국 사람들이 어디 미국 애들처럼 면전에서 조금씩 빈정대고, 그러는 게 허용이 되던가요. 그러니 숨겨놓고 있는 거죠. 저도 욕망의 도시 서울에서 자라났다고요.”

“욕망의 도시 서울이 뭐 어떻길래요?”

“대치동이 어떤 동네인지 못 들어보셨어요?”

대치동은 한국에서 사교육이 흥행하는 곳이였단다. 한국 사회에서는 출신 대학이 어디인지가 굉장히 중요했어. 여기보다 훨씬 더.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부모들은 사교육을 보냈고, 그 정점이 대치동이란 동네였지.

“대치동에서 자라셨어요?”

“엄마가 지방대를 졸업하고, 연구 실적만으로 명문대에서 교수를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어떤 때는 많이 서러웠데요. 그래서 어떻게든 저를 명문대로 보내려고 온갖 학원에 다 보냈죠.”

“우와, 힘들었겠네요. 저는 학원은 한두 개 다닌 게 전부인데, 그래도 귀찮던데.”

“그랬죠. 그 시절엔 엄마가 많이 미웠어요. 그래서 대학에 갈 땐 일부러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로 진학해버렸어요. 엄마한테 계속 감시받기 싫어서.”

그랬단다. 네 엄마는 얌전한 척하는 반항아였단다. 일부러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는 수업에 안 나가고 종일토록 기숙사에서 영화만 봤다더구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반항을 해도 돼서가 아니라, 부모 몰래 반항하는 게 사실은 얼마나 후회스러울 수 있는지 말하려고 하는 거란다. 어쨌든 네 엄마는 학교를 등록만 하고 안 다니면서, 영화만 보고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을 했었지. 그런데 사실 너희 외할머니는 그걸 다 아셨다고 하더구나. 그 학교 교수로부터 건너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그래도 너희 외할머니는 그냥 놔두셨지. 대학 때는 어느 정도 자유도 있어야지 했었대. 차라리 안 나가서 재수강할 수 있게 학점을 낮게 받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셨다더구나.

그런 생활을 1년쯤 했을 때에 네 엄마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대. 왜 자신이 흥미도 없는 이런 학교에 오게 되었는가. 그러면서 네 외할머니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어느 날 무작정 기차를 타고 외할머니가 계시던 대학에 가서 외할머니의 연구실로 찾아갔대. 외할머니는 제자와 면담 중이었지. 외할머니는 네 엄마를 보자 제자에게 미안하다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다음에 만나자고 하셨대. 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따지듯 물었지. 왜 그렇게 좋은 대학 졸업장이 중요했냐고, 어차피 대학 가고 나면 내가 뭘 해도, 학점이 어떻든 별로 신경도 안 쓸 거면서.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앉으라고 하셨대. 차 한잔하자며 물을 올리셨대. 물이 끓을 때까지, 네 엄마는 생각이 아주 많았다고 하더구나.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대. 뭔가 끓어 넘치는 마음이 있어서 오게 되었는데, 그래서 따지듯 물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속이 시원했는데, 그 다음에 돌아올 외할머니의 대답은 피하고 싶었다고 하더구나.

“네 대학에 같이 다니는 애들이 대전에 다른 대학 다니는 애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여자애들은 다른 대학 남자애들이랑 미팅이라도 하려고 하니?”

“잘 안 하려고 하긴 하죠.”

“왜 안 하려고 하니?”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급이 안 맞다고 생각하는 애들도 많더라고요.”

“그래. 나는 이 학교에서 몇 안 되게 그런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지. 그런데 내 나이가 50이 넘은 지금도 이 학교엔 나를 그런 선입견으로 대하는 경우가 있어. 그것도 짜증 나게 대놓고 말은 안 하면서. 참,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교수면 연구 실적과 강의 평가로 말을 해야지.”

“그렇군요.”

“나는 너에게 그런 선입견을 받게 하기 싫어서, 그래서, 나에게는 너에 대한 최선을 다했던 거다. 그게 너를 괴롭게 했다면 엄마가 미안하구나.”

그러자 네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고 하더구나. 네 외할머니는 내가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는 아주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타일이시더구나. 네 엄마도 진짜 화가 날 땐 독기가 넘치는 사람이라지만, 그날만큼은 네 외할머니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들었다고 해. 네 엄마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네 외할머니가 나가자고 하셨다구나. 네 엄마는 그냥 됐다고 하고 대전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 그 다음날부터 네 엄마는 학교 수업에 꾸준히 다녔단다. 졸업한 후에, 네 외할머니는 네 엄마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지. 그래서 영화 공부를 하러 유학길에 올랐다고 하더구나.

“개츠비가 자신의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만 보면 그날의 엄마와의 대화가 떠올라요. 그 이전에는 이것저것 많이 궁금해하는 나 자신이 엄마를 보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에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죠.”

“우와……. 과제 금방 끝내시겠네요.”

“아뇨. 그래도 이것저것 생각할 건 많은 것 같아요. 라스코 교수가 성적 처리가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건 아시죠? 아무래도 많은 걸 생각한 후에 과제를 작성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진짜, 저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뭘 하든 거의 무신경하게 둘 거에요.”

물론 이런 다짐은 네가 불평하듯이 이루어지진 않았지. 그래도 다른 아시안 부모들에 비하면, 우린 거의 네 인생에 개입 안 하는 거란다. 내가 저 이야기를 듣자 생각이 났던 건 아버지였단다. 아버지는 나와 미지가 무얼 하든 즐거워하고 있으면 기분 좋아하셨지. 내 엄마가 왜 그렇게 방치하냐는 불평을 할 정도로 말이야. 그러자 나에게 유학을 오라고 했던 날의 아버지가 떠올랐단다.

“주은님, 주은님은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요?”

네 엄마에게 다짜고짜 물었지. 네 엄마는 약간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말하더구나.

“글쎄요……. 때론 사실은 무의미한 거고, 진실은 의미가 많은 거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요?”

“음……. 엄마가 청소년 시절에 나를 많이 힘들게 했던 건 사실이죠. 그러나 그건 무의미해요. 엄마가 왜 그런지 알았으니까. 엄마의 삶이 학벌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는 게 진실이죠.”

그 말을 듣고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되물었단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네 외할머니가 청소년 시절에 네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던 게 진실이 아니었냐고. 그랬더니 네 엄마는 너털웃음을 짓더구나. 그러고서는 그렇게 곤란한 질문을 하면 어떡하냐고, 그렇게 내밀한 이야기까지 듣기를 원하면 훨씬 더 친해져야 할 거라고 쏘아붙이며 말했지. 그 순간이었을 게란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순간 네 엄마가 굉장히 멋있어 보였단다. 아마 그 순간이 없었다면, 우리 둘이 결혼하고 너를 낳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을 게야.

샌드위치 가게를 나서고, 인사를 나누고, 기숙사로 들어와 내 침대에 누워서도, 내 생각은 오로지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뿐이었단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봤지. 그런 후에는 과제를 시작할 수 있었단다. 과제를 하면서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르겠구나. 마지막 수업은 각자가 간단히 학기 과제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단다. 내가 첫 번째 발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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