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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진실을 마주해야 했던 밤

집으로 돌아와서는 우리 가족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식사를 했어. 나는 내 방의 TV 앞에서, 엄마는 거실의 TV 앞에서, 그리고 아버지는 식당의 카운터로 돌아가서. 달랐던 점이 있다면, 저녁을 다 먹었을 때쯤에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점이었어.

아버지는 갑자기 ‘깊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요’가 무슨 뜻인지 물으시더구나. 그래서 나도 모르겠고, 그냥 영화 대사였다고 말했지. 그러자 아버지는 어떤 대사냐고 물으시더구나. 그래서 대답했지. 그건 영화에서 잘 안 드러나는 이야기이긴 한데,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우주적인 경험 속에서 집단적인 몽환에 빠져드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연극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지. 거기에서 주인공은 그 전부터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비관적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인물이라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들을 장인에게 맡기고 도망치려고 했었다고. 그러다가 몽환 속에서 주인공은 아내를 만나고 진심으로 슬퍼한다고. 그리고 그 몽환의 마지막에는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깊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고.

“그러고 나서는 주인공은 괜찮아졌나?”

“모르겠어요. 연극에서 주인공이 아내를 만나는 부분은 삭제가 되었어요. 에필로그라고 나오는 부분에서 주인공은 계속 쌀쌀맞고, 주변에 무관심하고, 간섭받기 싫어하죠.”

“그렇나?”

아버지는 그러고서는 갑자기 미지가 죽기 며칠 전 이야기를 하시더구나. 미지가 아버지한테 울먹이며 전화한 적이 있다고.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싶다고 했었대. 아버지는 난처해하다가 갑자기 걱정이 들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대. 그랬더니 미지가 아무 일 없다고 싸늘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는데 소름이 돋았다고. 그래서 그 뒤로 매일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늦고 대답도 짧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미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자살인지 알았다고. 그러더니 나에게 물으시더구나.

“니는 괘안나?”

“뭐가요?”

“니는 괘안냐고.”

“아, 괜찮죠. 멀쩡한 거 아까도 보셨잖아요.”

“그래. 괜찮으면 됐다.”

그날, 아버지는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셨어. 평소 들어오시던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연락이 없자 엄마는 당황하기 시작했단다. 통화도 안 받으셨어. 마담 셜록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었지. 그래서 엄마가 경찰에 신고해보겠다 하실 때쯤에 아버지가 들어오셨어. 아버지는 술을 좀 드신 상태였단다. 엄마는 안 와서 걱정됐었다며, 마담 셜록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경찰에 신고할까 했다고 하셨지. 그러자 아버지는 갑자기 화를 내셨단다.

“당신은 우리 딸 이야기 팔아서 돈 벌어묵은 년이 그렇게나 좋나?”

“팔아먹다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해주신 거지. 덕분에 한경이도 억울한 일 안 당하고 얼마나 좋아? 당신은 가장이 되어서 애들 일에 매사 무관심하고, 애들한테 무슨 일 있어도 수수방관만 하고! 왜 이렇게 가장이 무책임해?”

그러자 아버지는 마담 셜록은 작은 가능성들로 진실을 호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지. 엄마는 진실이 뭔지 모르니까 사실들로 유추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셨어. 그러자 아버지는 엄마에게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지. 엄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아버지를 노려봤어. 아버지는 계속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뭐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지.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안방으로 끌고가기 위해 아버지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단다.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진실은 그것들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거죠. 그러니까 저에게 진실은 아버지는 취하셨고, 들어가서 주무셔야 한다는 거에요.”

“진실이 내 마음에 드는 거라꼬. 그기 진짜로 맞나?”

“네, 맞아요, 아버지.”

“니 똑띠 말해라. 미지가 죽기 전까지 우야고 있었노?”

아버지에게 왜 그러냐고 내가 되물었지.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아버지 질문에 대답해보라고 하셨단다. 엄마의 표정은 마치 살고 있던 집이 무너져내린 듯이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어. 그래서 더 말하기가 싫었는데, 아버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서 하는 수 없이 진실대로 말해야 했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로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했는데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그냥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게 보였는데, 그래서 많이 힘든가보다 했다고. 그러더니 얼마 안 있다가 자신의 미래가 괜찮을까 하는 말을 했어서, 대학 졸업반에 진학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었다고. 그 시절 취업률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단다. 내가 무슨 일인지 캐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했지. 그 말을 하고 나자 다리에 힘이 풀려주저 앉게 되었단다. 그리고서는 엉엉 울었지.

그러자 아버지도 아까 말했던 미지와의 통화에 대해서 말하시더구나.

“내가 그 전화를 받고, 내가 서울로 올라가보던가, 아니면 엄마를 서울로 보내던가, 했었어야 했는데, 한경이 니 잘못 아니데이. 아버지가 되어서 내가 챙겼어야지. 니가 갸 부모도 아이고. 가게 일 바쁘다꼬, 니 엄마하고 상의할 생각도 안하고, 내 잘못이데이.”

그러면서 아버지도 우셨단다. 그러자 엄마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셨지. 나는 미지의 유서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엄마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지. 더 이상은 말할 수가 없다고 느꼈단다. 그날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었지. 내가 미지를 잘 살피지 못한 책임을 추궁당하는 게 무서워서, 그리고 그때까지 유서를 숨겼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래서 말을 하지 못한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입을 닫은 것을 아직까지도 후회한단다. 내가 용기냈었다면, 우리 가족의 밝아진 모습을 보고서 유학을 왔을텐데…….

우리 가족은 모두 울음을 그치고도 한참 멍하니 있었지.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침묵을 깬 건 아버지였어.

“오늘 부동산에 가게 내놨다.”

“왜요? 가게 안 하면 뭐하게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긋나? 지금처럼 손님이 쪼매라도 있을 때 가게를 내놔야 권리금 쪼매라도 봤지. 나중에 이 골목에 손님 다 빠지고 나믄, 권리금도 아예 못 받게 된다.”

“그래도 평생을 일궈오신 가게인데…….”

“그래가지고 우리 똑똑한 아들 이래 길러냈재. 권리금 받으면, 니는 그걸로 고마 미국에 영화 공부하러 가그래이.”

왜 갑자기 미국 타령이냐고 했지. 아버지는 미지 마지막 소원인 만큼, 내가 대신해서 미국으로 유학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아까 영화 이야기하는데 오랜만에 내가 멋있어보였다고, 그러니까 미국으로 영화 공부하러 가라고 하셨지. 아버지가 술 취하시고, 감정도 북받쳐서 그러시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날 잠에 들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단다.

다음날, 엄마는 아침을 차리시다가 갑자기 통곡하시기 시작했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게더구나. 엄마는 엉엉 울다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퍽 누워버리셨어. 그리고 계속 우셨지. 내가 가서 제지하려고 하자, 아버지는 그냥 놔두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그러고도 한참을 더 우셨지.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나는 한숨을 놓았지. 그러다가 기절하시면 어떡하나 했거든. 엄마는 갑자기 나에게 유학을 가라고 하시더구나. 안 간다고 했지.

“아니, 엄마도 아버지도 갑자기 웬 유학 타령이에요. 난 지금 잘살고 있는데, 권리금 나오면 그걸로 또 다른 사업 어떻게 할지나 구상해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네가 지금 사는 게 사는 거냐?”

“살아있잖아요.”

“잘 못 지냈잖아. 여기서.”

할 말이 없었단다. 부모님 댁으로 간 뒤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그렇게 나는 한 달 뒤에 유학길에 올랐단다. 올 때만 해도 오기 싫은데 억지로 오는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었지.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정말 못 이기는 척하면서 이렇게 온 거더구나. 그렇게 이곳 캘리포니아로 와서 어학원부터 다니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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