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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사실과 진실

“아버지가 저를 유학 보내기로 결정하던 날, 저에게 던지셨던 질문이 있습니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뭐냐고. 저는 그냥 흔한 술주정인줄 알고,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진실은 그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말했죠. 그런 후, 나에게는 진실이 아버지는 취하셨고, 이제 들어가서 주무셔야 한다는 거라고 말했죠.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여동생 미지의 자살로 인하여 몇 년간 마음속의 고통을 숨겼어요. 서로 미지의 이야기를 꺼내기를 힘들어했죠. 가족 모두 속으로만 힘들어 했습니다.

엄마는 하루종일 범죄 관련 유튜브만 보셨어요. 범죄 유튜브는 미지를 죽인 살인자가 따로 있을 거란 말들을 했거든요. 그후로 몇 년간 엄마는 미지에 관련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며, 범죄 유튜브를 계속 들으셨습니다. 미지와 저는 둘만 따로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모든 게 동생의 힘듦을 알고도 캐묻지 않고,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제 탓인 거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저는 메인테마는 사진작가인 주인공 오기 스팀벡의 아내를 잃은 후의 상실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영화의 제목이면서, 영화에 나오는 가상의 연극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컬러로 표현되는 연극 속의 장면들과, 흑백으로 표현되는 연극과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보여주죠. 연극 속에서 오기는 주변의 모든 인물에게 괜히 공격적이고, 남들의 관심사에 대해 하찮게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싶어하지 않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가 고통에 잡아먹혔다고 할 수 있겠죠. 처음 만난 밋지 켐블의 눈가에 멍이 들어있는 걸 보자, 어떤 맞을 짓을 했길래 그렇게 되었냐고 쏘아붙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살라는 장인 앞에서 ‘우리를 동정하지 마세요. 우린 비통에 잠겨 있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딸을 잃은 장인 앞에서 말입니다. 알고 보니, 그는 장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도망칠 예정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들통나자, 잠시 임시방편으로 그럴 예정이었다고 둘러대죠. 약간의 로맨스가 진행되는 밋지 켐블과의 관계도 기이합니다. 각자가 서로의 고통을 말하는 것에만 몰두하죠. 서로 상대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하지도 않습니다. 외계인의 등장으로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외계인의 사진을 찍은 이유에 관해 묻자, 자신은 사진작가라서 찍은 것이라고만 말합니다. 외계인의 등장은 세상의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외계인에게 공격적이지요. 외계인은 아주 소심한 포즈로 지구에 내려왔지만, 오기는 외계인이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기분 나빴다고 말해버립니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3주나 지나서 부인의 죽음을 알려주며 ‘천국에 있다고 하자. 나는 그런 거 안 믿지만, 너희들은 성공회교도잖니.’라고 말합니다. 정말 제 친구가 자기 자식들에게 그러면 한 대 쥐어박고 싶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오기 스팀벡은 한 발 더 나가버립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잃어버렸을 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자신의 엄마가 아버지는 별나라에 있다고 말해주자, ‘저것보다 가까운 별도 4.5광년 거리이고, 그 표면 온도는 섭씨 5,000도예요. 아버지는 별나라에 안 계셔요. 땅속에 계시죠.’라고 말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죠. 그가 영화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감정 이입을 못 했을 정도로 정말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죠.

그러나 원래 그가 그런 인간인 것만은 아닙니다. 원래 극작가가 썼던 시나리오에서는 그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대사가 두 번 등장하죠. 영화 속에서 이 연극을 다루는 연극 바깥의 여러 에피소드들에서는 그의 대사를 엿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죠. 그가 아들 우드로에게 외계인이 훔쳐간 소행성에 대해 백과사전에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네 엄마였다면 아마 외계인에게 말을 걸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대놓고 우주의 비밀을 묻던가, 소릴 지르거나 웃겨서라도 뭔가를 알아냈겠지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를 놓고 보면 그가 종군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동행했을 때 아내가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죠. 그리고 아들에게 ‘너를 보니 엄마 생각이 나네.’라고 말하는가 하면, ‘지금도 가끔 그녀의 숨쉬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아, 저 어둠 속에서 말이야. 혹시 아니? 정말로 그녀가 별에 있을지’라고 말합니다. 정말 애절한 사랑꾼이죠. 연극에서 그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 우드로의 관심사에도 관심이 정말 많죠.

다른 장면에서도 그의 대사를 엿볼 수 있죠. 연극 밖에서 우연히 만난 원래는 아내 역할로 캐스팅되었던 배우는 자신이 출연했어야 하는 씬의 대사를 아직도 외우고 있습니다. 그 씬은 원래 일주일간의 격리 생활 속에서 점점 현실 감각을 잃어가는 등장인물들이 다시 외계인을 만나고 몽환적인 꿈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오기가 꾸는 꿈입니다. 오기는 외계행성에서 아내를 만나죠. 아내한테 외계인에게 말을 걸어보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외계인이 수줍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오기는 우드로 이야기를 합니다. 우드로도 수줍음이 많다고, 그래도 크면 달라지겠지, 엄마도 없는데 달라져야지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걘 대기만성형이야. 그래도 날 대체할 사람을 찾아줘.’라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오기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자신은 이제 돌아올 수 없다며, 노력은 해보라고 말합니다. 오기는 울며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대사들이 생략된 채 연극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오기의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밋지 캠블과 둘의 애매한 관계에 대해 말하며, 이건 무언가의 시작이 아니라는 밋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오기가 외계인의 시선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말합니다. ‘너흰 끝났다’하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쳐다봤다고 말하더니, 얼마 안 있다가 자기의 손을 열이 오른 전기 버너에 데어 버립니다.

연극 밖에서 이 장면이 언급된 것은 두 번이죠. 그리고 그 두 에피소드 모두 오기의 생략된 대사가 나오는 장면들과 동일한 장면입니다. 배우는 극작가를 만나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 우드로와 대화하는 장면의 대사들을 연기하기 전에 왜 오기가 버너에 손을 덴거냐고 묻습니다. 극작가는 사실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배우는 오기가 가슴이 빨리 뛰자 그에 대한 핑곗거리를 찾는 것이라고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극작가는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이 장면이 연극 밖에서 언급된 것은 영화가 거의 마무리에 이를 때입니다. 오기의 다른 면을 알 수 있는 대사들이 전부 생략된 연극을 연기하던 배우는 갑자기 의문스러워 합니다. ‘오기는 왜 버너에 손을 갖다 덴 거지? 아직도 이 연극이 이해가 안 돼.’하면서 화면 바깥으로 나가버립니다. 그리고서는 연출가를 찾아가죠. 연극 속 세계를 만든 극작가는 이미 죽은 후였기에, 연극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서는 연출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연출가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연기가 맞냐고. 혼란스럽다고. 그의 아픔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연극이 끝나고서도 매일 밤 고되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연극을 계속해야 되냐고. 저 우주 어디에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연출가는 연기를 잘하고 있다며, 이외에는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연기를 계속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자 배우는 바깥공기 좀 쐬야겠다며 건물 바깥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아까 말한 듯이 우연히 아내 역할을 맡을 뻔 했던 배우를 만나죠.

아내 역할을 맡을 뻔 했던 배우가 둘이 주고받았어야 하는 대사를 말하자, 오기를 연기하던 배우는 좋은 회상씬인데, 왜 잘라냈을까 하며 묻습니다. 그러자 아내 역할을 맡을 뻔 했던 배우는 모른다며, 아마 러닝타임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러닝타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극에는 전혀 필요없는, 시간을 늘어뜨리는 장면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끼리 사람 이름 대기 놀이를 하는 장면과 같이 연극적 의미가 전혀 없는 장면도 굉장히 길게 연출됩니다. 시간 탓을 하며 연극의 본질적인 장면을 없애버린 거죠.

이번 리포트를 위해 이 영화를 계속 되돌려보면서 저는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진실은 사실 중에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진실되다고 말합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진실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 진실입니다. 연극에는 오기에 대한 여러 사실이 나옵니다. 오기는 사진작가이며, 무교이고, 죽은 자는 다른 곳 아닌 땅속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아내가 죽은 지 3주 정도 지나고 나서 여배우와 섹스를 했고, 아이를 장인에게 맡기고 도망치려고 했던 사람이죠. 그러나 앞에 나열한 수많은 사실 중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닙니다. 오기의 진실은 연극에서 생략된 장면들 속에서 찾을 수 있죠. 오기는 아들의 관심사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아내를 사무치게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대체할 사람을 찾는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아들의 수줍음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습니다. 엄마 없이 잘 자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것이 오기의 진실이죠.

어떤 핑계를 대며 진실을 외면하는 삶, 그런 시절을 우리 가족은 지나왔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미지의 자살에 대하여 죄책감을 많이 느꼈죠. 그리고 엄마는 미지가 자살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돌려버릴 다른 것들을 찾았죠. 엄마는 미지가 살인을 당한 거라고 말하는 유튜버들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정치평론가들의 말로, 저는 영화로 신경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각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을 느끼지 않으려고요.

그러다가 맞이한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물었습니다. 그러고서는 미지가 죽기 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정확히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에 대해 답하고 나자, 저는 죄책감을 말하며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아버지도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셨습니다. 엄마는 그런 후 하룻밤이 지나서야 미지의 자살을 받아들이실 수 있었습니다. 아침 내내 펑펑 우셨습니다. 그리고서야 우리는 몇 년간이나 지속되었던 한 시절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정신과에 다니며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를 받으신다지만, 그때보다는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점점 손님이 줄어들던 식당을 정리하고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십니다. 일이 더 고되어도 마음은 훨씬 편하다고 하시네요. 저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곳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도 해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신경 써야 하는 일도 많지만 제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그렇게 진실을 마주하고, 진실을 온전히 느끼고 나니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결말부는 전혀 다릅니다. 아까 말했던 장면 다음에는 다시 컬러 화면으로 돌아가면서 에필로그라는 후일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연극의 장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도입부에 분명히 연극은 1막, 2막, 3막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나오거든요. 그러니 연극에서 고통의 본질을 다루는 부분은 모두 생략된 채 계속되고 끝이 난다면, 후일담이 어떻게 될지 영화에서 보너스 장면으로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이 연고도 없는 곳에 아내의 유골을 묻으려 하는데, 오기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밋지는 인사 없이 사서함 번호만 남기고 떠나고, 오기는 쿨하게 그 사서함 번호를 그냥 받아서 챙깁니다. 장인이 밋지에 대해 재능있는 코미디언이라고 말합니다. 오기는 밋지가 자신에게 달라붙은 코미디언이라는 꼬리표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그렇다고 답합니다. 아들 우드로에게 계속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건 오기가 아니라 장인입니다. 그리고 오기는 장인이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자 간섭받기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죠.

어쩌면 그러한 모습이 현대사회와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현실을 두고,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때문이다. 경쟁을 시키다보니 너무 바빠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시간이 없어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번외적인 여러 사실에 집중하면서, 진실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미지의 자살에 있어서 저의 책임을 인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랬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 우리 가족은 고통받았죠.

‘깊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 이 영화에서 이 연극의 주제에 대해서 말해주고 즉흥연기를 하던 수업 도중에, 학생들이 단체로 반복해서 말하던 대사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나오는 음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깊이 잠에 들면 꿈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소망했던 것을 한참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의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깊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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