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은 모두 기자였는데, 정권이 바뀐 후에 하나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하나는 직장에서 승진하였단다. 그 시절, 한국에서 공영방송의 기자란 그런 자리였지. 대통령이 바뀌면 방송의 진행자가 싹 교체되었지. 가족끼리 모여야 하는 일이 있으면 둘 다 느지막하게 와서 집안일을 거의 거들지도 않으면서 만나면 싸우기만 해서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어. 한국에서는 제사라는 의례를 지내곤 했었는데, 죽은 가족에게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행사였단다. 그해 제사는 쫓겨난 기자 삼촌이 우리 집에 오고, 승진한 기자 삼촌은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다고 했단다. 우리 가족은 싸울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었지.
그 무렵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웨스 엔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였지. 영화는 아내가 죽은 한 종군 사진기자와 그의 가족를 다루는 연극에 관한 이야기란다. 웨스 엔더슨 감독은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기로 유명한 감독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그가 묘사한 캐릭터였단다. 연극 안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과, 연극 밖에서 연극이 상연되기 전에 시나리오 단계에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이 다른 것이 그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었지. 그래서 연극 바깥에서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읊는 그의 원래 대사들을 듣고 눈물 흘리곤 했단다. 그래,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눈물이 참 많지. 삼촌이 오던 그날도 제사 음식을 만드는 일을 다 도운 후 내 방에 들어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단다.
삼촌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왔단다. 우리는 그 시절 한국에서 친지들이 만나면 의례적으로 그러듯이 아주 살갑게 안부를 물었고, 각자가 다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내는 척을 했지. 직장에서 짤린 삼촌은 아주 힘있게 유튜브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고, 매상을 매일 걱정하던 네 할아버지도 요즘은 신메뉴가 잘 팔린다고 말하며 걱정이 없는 척했지.
“가만 있어 보자. 한경이는 왜 이렇게 눈이 부었대. 울었어?”
“아이고, 삼촌, 요즘 한경이는 영화만 보면 마구 울어요. 문화콘텐츠 관련 회사 취직해보고 싶다더니, 취직도 전에 문화콘텐츠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네요.”
네 할머니는 거짓말을 했단다. 그 시절에 내가 취직에 뜻이 없다는 것은 부모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 그렇지만 친지들 앞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했단다. 한국에서는 청년이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건 곧장 한심하다는 말로 연결되었지.
“요즘 대통령 바뀌고서 문화콘텐츠 회사 실적도 예전 같지 않다던데, 취업 공고는 많이 뜨던가?”
삼촌이 물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오늘은 무슨 영화를 봤었니?”
나와 부모님이 침묵을 지키자, 삼촌은 바로 주제를 바꾸었단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라고 답했지. 그러자, 삼촌은 곧바로 모른다고 말했어. 그럴줄 알았단다. 그 영화는 독립영화관에 자주 가는 사람만이 즐기는 영화였지. 그래서 웨스 엔더슨 감독이 지난해 만든 영화라고 말해주었지. 그러자 삼촌은 곧바로 알아들었단다.
“아, 요즘 AI들이 만들어주는 사진 중에 웨스 엔더슨 감독 풍의 미장센이 유행한다고 하더라. 와, 한경이는 아주 문화적 소양이 높구나.”
사실 웨스 엔더슨 감독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문화적 소양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지. 웨스 엔더슨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지 못해도 웨스 엔더슨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애들은 참 많았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웨스 엔더슨 감독을 좋아한다고 하면 허세 떨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지. 그렇지만 삼촌은 영화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손사래를 치며, 그냥 영화를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어. 한국에서는 친지들에게 겸손함을 내보이는 게 미덕이기 때문이었지. 네 할머니는 때마침 식혜와 과일이 얹어진 상을 들고 왔고,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삼촌은 셋이서 상에 앉아 각자가 알고 있는 친지들의 근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그나저나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는 참 경제가 문제에요. 요즘 한국의 무역수지를 보세요.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골목 상권도 다 무너지게 생겼어요.”
삼촌이 한 마디 했지. 한국 사람들은 무역 적자가 생기면 대통령이 책임질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단다. 물론, 정부 정책 때문에 그렇게 된 경우에는 대통령이 최종 책임자이지. 그러나 한국은 정부 주도의 수출 공업화로 인하여 경제가 성장한 나라라서 그런지, 무역 적자가 생기면 거의 모든 경우에 정부와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곤 했단다. 그건 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
“그러게나 말이다. 며칠 전에는 15년간 우리 골목에서 장사하던 문방구가 문을 닫았대이.”
“정말, 이번 정부는 민생에 대해 너무 신경 안 써요. 지난 정부 때 했던 민생 정책 다 뒤집고.”
삼촌은 이렇게 말했지. 그러나 그 말은 곧 네 할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렸단다.
“아니, 뭐. 지난 정부라고 민생 정책이 있었나?”
“아니, 왜 없어요? 최저임금을 인상시켰죠.”
“그래서 민생 경제가 작살났제. 가게 망한 골목 소상공인들이 몇이고, 멀쩡하던 소상공인들이 해고해서 직장을 잃은 사람이 몇인지 아나?”
“아니, 그건 맞는데, 우리나라도 유럽 선진국들처럼 인건비가 비싼 나라가 되어야죠. 소상공인들도 형님처럼 신메뉴 개발해서 경쟁력을 갖추고.”
삼촌이 그렇게 말한 후에 한참 침묵이 이어졌단다. 아버지의 표정은 일그러졌었지. 아마, 내가 본 아버지의 표정 중에 가장 침통한 표정이었을 게다. 사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신세대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닭갈비는 아무도 찾지 않는 메뉴였단다. 신세대들은 더 트렌디하게 꾸며진 가게에서 닭갈비를 먹는 것을 좋아했지. 기존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그 메뉴를 좋아하지 않았단다. 삼촌도 아버지의 침통한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한참의 침묵이 있었던 뒤, 삼촌은 못 견디겠던지 잠시 담배를 피우겠다고 나갔지. 나도 따라나섰단다. 손님이 오셨는데, 기분이 편치 않은 것 같이 보여 따라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삼촌 옆에 있었지. 그런데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삼촌의 담배 연기가 올라가는 것만 멍하니 보았단다.
“이번 정부는 정말 외교 관계도 엉망이고, 이대로 계속 가면 나라가 어찌 될런지.”
삼촌이 담배를 피우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단다.
“제가 요즘 뉴스를 안 봐서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대학 다닐 때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그러더니, 요즘에는 뉴스도 안 보는구나.”
두 삼촌은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멋있는 사람들이었지. 사회 이슈에 관해 자신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동경이 있었거든. 그러다가 백수 시절에는 그럴 마음이 없어졌단다. 어느 날, 뉴스를 보고 친구에게 화가 난 것을 말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서는 사회 이슈에 반응하는 내가 초라하게 보였단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일에 왜 이렇게 나는 열불을 내는가 하고. 그리고 친구들에게 한동안 이런 장난을 치고 다녔단다.
백수 생활을 오래 해보니까 홍길동, 그러니까 한국에서 유명한 의적이 왜 도둑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고. 백수 생활 오래 하면 나랏님, 그러니까 국가 원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국가원수를 욕하고 다녀야 자존감이 유지되는데, 홍길동은 그럴 수가 없었다고. 왜냐하면 홍길동 시절에는 나랏님이 세종대왕, 그러니까 한국에서 가장 성군으로 유명했던 왕이 다스리던 시절이기에 나랏님을 욕할 수 없었다고. 그러니 홍길동은 자존감 유지를 위해 도적질을 하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거라고.
삼촌에게도 그런 농담 아닌 농담을 치고 나서, 홍길동이 안 되려고 나랏님 욕 안 하고 자존감을 유지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지. 언제 훌륭한 사람이 대통령 될 줄 모른다고. 삼촌은 실실 웃었지.
“그래, 지금 정부 하는 거 보면, 그렇게 욕하고 싶을 수 있지. 정부 욕하고 자존감 찾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돌려까냐.”
사실 난 할 말이 없었단다. 그 농담을 하고 다닌 것은 그 이전 정부 때였었거든. 그냥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지. 그러자 삼촌은 내가 아까 봤던 영화는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지. 아내를 잃은 종군 사진기자와 그 가족에 관한 연극을 주제로 하는 영화라고 말했어. 그 영화에서 눈물이 나는 지점은, 실제 연극에서 생략되어있는 대사들이 연극 밖의 에피소드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때라고 말했지. 연극 안에서 종군 사진기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그리고 우연히 만난 영화배우와 약간의 로맨스를 나누지만, 둘은 언제나 서로가 평소에 숨기고 다니는 고통을 자랑하듯 내비치고 공감받기만을 원한다고. 그런데 실제 연극에서는 덜어낸 부분에서는 그의 아내와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아내와의 재회에서는 사진작가는 아들의 관심사인 외계인에 관하여 묻고,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 말하며 아내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그게, 뭐 어쨌단 거냐.”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잘린 게 결국 러닝타임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 부분이 잘린 채 연극을 계속하는 배우는 사진작가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죠. 그를 연기하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다고.”
“오오, 심오하네.”
삼촌은 그러더니 갑자기 나도 사는 게 바빠서 잊었던 게 많지, 라고 말했어. 담배가 꺼졌지만, 삼촌은 들어가기 싫은 기색이더구나. 잠시 벤치에 앉아있자고 했지. 왠지 그 모습에 멀게만 느껴졌던 삼촌이 다시 가깝게 느껴지더구나. 따라서 벤치에 앉았지.
“참, 너 어릴 때는 내가 동료 기자들한테 너 자랑만 하고 다닌 거 아니? 영특한 조카가 있다고. 그랬더니 한 선배가 말하더라. 조카 자랑하지 말고, 빨리 장가 들어서 아들 낳으라고.”
“제가 뭐가 영특했다고…….”
“아니, 영화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요즘도 영특하네. 영화 평론가 해도 되겠다.”
그러더니 갑자기 삼촌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구상을 말하기 시작했지.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모두 대안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 거라더구나. 아무래도 지금 정부가 응원하는 방송은 세상을 망치기만 하는 것 같다고. 복지 사회 건설이 우리나라의 현실적 과제인데, 너무 그런 걸 외면한다고 말했지. 그래서 응원한다고만 대답했어.
그랬더니, 내가 영화 파트를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말하더구나. 아까 말한 그 영화 같은 경우에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강요하는 바쁜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조명하면 어떻냐고 말했지.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정도로 나오는 걸요? 연극 배경은 1955년이고요.”
“어쨌거나 작년에 개봉한 영화잖니?”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본질을 잊어버리고 기호만 소비한다고 비판한 게 1970년이에요. 이건 신자유주의랑은 관계없는 현대사회의 모습이에요.”
“어쨌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랑 연관성이 아예 없니? 나도 요즘 사는 게 바빠서 너를 잊었다 말했지 않았니?”
“삼촌은 1960년대에도 언론사 기자였으면 일에만 열중했을 사람인 걸요.”
그러자 삼촌은 아무 말도 없었지. 내가 대학 시절까지 삼촌들을 좋아했던 것은 정말 열정적으로 자신이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도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란다. 기자 일에는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었지. 그런데 그때는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 존경하는 마음이 많이 가신 상태였단다. 그런데 그날은 그 점이 짜증이 날 지경이었지.
“요즘에 유튜브들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다루는 채널은 인기 없어요. 적어도 우리 세대한테는요. 그런걸 선전선동이라고 생각하죠.”
“왜 그렇게 유튜브에 대해서 비판적이니? 미지 장례식 때, 범죄 관련 유튜버들이 너를 가지고 범인이다, 아니다 편 갈라서 싸워서 그렇니? 나는 그런 양아치 같은 유튜브 안 해.”
“다를 건 뭔데요.”
내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가, 서로 목소리가 커졌지. 그때 아버지가 벤치 앞에 나타났단다. 네 할머니가 보내신 거였지. ‘마담 셜록’이라고 내가 무죄고 살인자는 따로 있다고 말했던 대표적인 유튜버가 다루었던 사건 중에 제사 때 삼촌과 조카가 싸우다가 일어난 살인 사건이 있었나봐. 갑자기 네 할머니가 그 사건이 생각이 나서 불안하다고 불러오라고 하셨다고, 네 할머니가 나중에 말씀해주셨지. 아버지는 우릴 발견하고 짜증이 난다는 말투로 말하셨어.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만나서 뭣하러 싸우고 있노? 이럴 거면 네 고마 집에 가그래이.”
“형님, 싸우는 건 아니고. 그냥 사소한 말다툼이었습니다.”
“제삿상 다 차맀다. 제사 지내러 올라가자.”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집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단다. 제사는 아까도 말했듯 조상에게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의례이지. 우리는 상에다가 음식과 위패를 놔두고 상을 향해 절을 했단다. 그리고서는 제사에 쓰인 음식을 나누어 먹었지. 그런데 그날만큼은 삼촌이 음식을 같이 먹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말했어.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더구나. 우리는 배웅하러 삼촌의 차가 주차된 곳까지 나갔지. 삼촌은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차에 앉고 시동을 걸더구나. 그러더니 삼촌은 나를 불러 말했지.
“아까는 내가 말을 심하게 해서 미안했고, 벤치에서 했던 제안 잘 한번 생각해봐. 네가 영화평론가로 성장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니까. 삼촌이 원래 진행하던 프로그램 팬 많았던 거 알지?”
“삼촌, 깊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요.”
“얜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가겠습니다, 형수님.”
그러고 나서는 삼촌의 차는 서울로 향하였지. 깊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내가 왜 그날 그렇게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구나. 그러나 그날 나는 그렇게 말했단다. 그 말은 아까 말했던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주요 대사 중 하나에서 따온 것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