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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13. 2024

내가 떠나온 나라, 대한민국

내가 떠나온 나라는 왜 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너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고민을 해보았단다. 네가 보여준 동영상에 나열된 이유들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더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는 손쉽게 완성된 세계에 살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곳을 떠나온 것은 네 할아버지가 나에게 유학을 권해서란다. 권한다기보다는 유학을 가라고 명령조로 말씀하셨지. 그게 내 인생을 통틀어 네 할아버지가 나에게 명령조로 말씀하셨던 거의 유일한 일이었던 것 같구나. 네 할아버지는 내 인생에 간섭하기 싫어하셨지. 그리고 네 할머니는 항상 그것이 불만이셨단다. 그래서 나에게는 가장의 역할을 늘 강조하셨었지.

예전에 신종 독감이 유행했을 때에 네 엄마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고 했었던 일 기억나니? 그때 너는 범죄자도 아닌데 그걸 누가 쓰고 다니냐고 했었지. 엄마가 젊었을 때는 코로나19라는 독감 유행 때문에 마스크를 2년간 쓰고 다녔다는 말을 했더니 네가 AI 챗봇에게 질문해보고서는 거짓말이라고 했었지. 그때 우리는 잠자코 있었지만, 그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사실이었단다. 인터넷에는 납득할 만한 거짓말이 너무 많아. 한국이 망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무렵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네가 보여준 동영상에는 영광의 시절로만 나왔던 일인당 국민소득이 삼만 달러에 가까이 되었을 때 이야기란다. 내가 할 이야기가 코로나 19보다 전이었던지 후였던지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한 버릇이 있었지. 대통령을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인데도 다른 말을 하곤 해서 혼란스러웠었지. 그 시절에 네 할아버지는 지방에서 제법 큰 식당을 했었는데 프랜차이즈 업체에 점차 밀리게 되자 매년 불만이 많았었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참 난감했지. 할아버지는 식당이 망해가는 이유를 항상 대통령 탓을 하다가 대통령이 바뀔 때면 열광적으로 응원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울상을 지으며 대통령 탓을 했었지. 나야 뭐, 대학 다닐 때는 누군가를 비판해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는, 술자리에서 주워 담지도 못할 말들을 하며 정치인들 모두를 다 욕했단다.

너에게는 고모인 미지가 죽음을 선택한 건 아마 그 전 대통령 때였을 거야.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흉악한 짓을 남자친구에게 당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가 자살했었지. 그때 둘이 살던 수도인 서울의 자취방에 있다가 미지가 남기고 간 유서를 발견했었지만, 부끄럽게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했어. 참담한 내용에 아무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유서를 들고서는 바보같이 미지의 대학 근처 술집과 카페들만 들쑤시고 돌아다녔어. 미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건 걷고 걷다가 지쳐서 미지의 대학 캠퍼스에 털썩 주저앉아있었을 때였단다. 나중에 경찰은 내게 왜 미지의 대학 캠퍼스 근처를 계속 돌아다녔냐고 물었지만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지.

유서에 대해 말하게 되면 나의 멍청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딸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님이 유서의 내용을 듣게 되면 미지가 그렇게 당하도록 방치했던 나를 탓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못했지. 서울에 살던 시절, 네 할머니는 통화할 때마다,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항상 나에게 신신당부하셨었어. 서울에서는 내가 가장이니 서울에서 일어나는 가정의 대소사를 내가 챙겨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미지가 죽은 이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미지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게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 더 마음이 아프실 거라고. 다 핑계였단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면은.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는데, 유서가 발견되지 않고 시신에 주저흔이 없었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다고 뉴스에 나오기도 했었지. 그 이후는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단다. 우리 가족 모두가 안 좋게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어.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지방의 본가에 내려가서 주구장창 영화만 봤었어. 네 할아버지는 손님이 많이 오지도 않는 식당에 앉아 큰소리로 정치평론가라고 하는 양반들이 나와서 떠드는 TV쇼만 멍하니 보았지. 할머니는 집안일을 하며 범죄와 관련된 유튜브를 열심히 보고들으셨단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었어. 그렇게 대통령이 바뀌었고, 여기저기 모든 곳에 사람들이 바뀌어 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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