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가 그 남자와 헤어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건 캐서린 이모를 통해서였단다. 그렇지만 난 소식을 듣기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는 상태였지. 네 엄마에게 다가가기에는 적절한 시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단다. 나에게도 내가 어디서 내 미래를 보내야 할지는 중요한 문제였지. 사랑의 마음 때문에 억지로 미래 계획을 네 엄마의 마음에 들게끔 세워내고 싶지는 않았어.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네 엄마가 사무치게 생각날 때면 보곤 했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다시 보는 일이었지. 왜인지 모르게 그 영화를 보면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지.
생각이 참 많은 시기였어. 공항에서 네 엄마가 미래의 계획에 관해 물었을 때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리긴 했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단다. 그냥 막연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거란 생각만 있을 뿐이었지. 그래서 어떤 날은 종일토록 호숫가에 앉아서 호수를 멍하니 보고 있는 날도 있었어.
호수를 종일토록 보았던 날,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건 라스코 교수가 네 엄마에게 했다던 말이었단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지만, 운명적 상대를 만나기만 하면 한 번으로도 충분해’였다는 말 말이다.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일지 곰곰이 생각했었지. 그리고는 기숙사에 들어가서는 글로 영화에 대해 정리해보았지. 정리를 다 마친 후 쾌감이 들었어. 뭔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칭찬을 받고 싶은 기분이었단다. 그래, 그 전 학기의 발표 때와 같이 말이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친구들에게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참뜻을 알았다며 이야기를 마구 하는 일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이해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관해 설명하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려보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지. 그때 고민했던 하나의 화두가 위로라서 그런지,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찾을만한 동영상을 만들어서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내용을 전달해보면 어떨까 싶었지. 위로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동영상을 만들어야 할까를 생각했지. 최대한 손이 덜 가는 동영상으로 만들고 싶었단다. 나도 그렇게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내가 스스로 어떤 때에 위로를 받는지를 고민했단다. 그런데 답은 뻔했지. 그날은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일토록 호숫가에서 잔잔한 물을 쳐다봤었던 날이었으니까.
어느 평화로운 날의 호숫가를 화면에 담으면서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통해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영상을 찍어보기로 했단다. 녹음과 화면 녹화를 따로 할까 하다가 귀찮고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도 않아서 원고를 써간 다음에 읽으면서 호숫가를 화면에 담는 것으로 하기로 했단다.
우선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지. 채널명은 ‘심심풀이 심작가’라고 했단다. ‘심심풀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심심함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한다’는 뜻이란다.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은 그저 단순하게 나에게 심심풀이용으로 동영상을 만들어본다는 뜻이었지. 그래, 맞아! 지금도 종종 동영상을 올리곤 하는 ‘Shim, the nuts’ 채널이지. 한국에서는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이 있었거든. 그런데 나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낄 때도 많아서 재미 삼아 영어로 채널명에 ‘Shim, the nuts’라고도 기입해둔 거였단다.
그렇게 채널을 만들고 다음 날 바로 동영상을 찍었단다. 핸드폰과 간단한 녹음 장비 하나만 들고 나갔지.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로 잔잔한 호수를 찍으며 녹음 장비를 입 가까이에다가 대고 말하기 시작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