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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25] 왕진

- 사회적 자원이 향할 곳

by leesy May 17. 2021

 공공의료 서비스는 시장 원리의 빈틈을 채우기 위한 정부의 책임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으레 있기 마련인 공급은 수요가 충분히 많지 않다면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국민 모두에게 건강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건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국민 모두가 동등하기 누릴 수 없다. 그때문에 건강권도 차별적으로 행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규모가 넉넉하진 않다.


 도서벽지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건강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 관절염이 심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서 시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도시민들은 평판 좋은 병원을 골라 진료를 받는다. 의료서비스의 수요가 많은 도시에 병원이 많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시장의 원리를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져야 할 책임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료서비스의 불균형은 이미 오랫동안 문제시돼왔다. 최근 그 흐름이 가속화된 듯 느껴지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노인들의 병원 접근성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공공의료 서비스 인프라 확충을 시도했던 정부는 의사 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일각에선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밥그릇 뺏기에 대한 저항은 보편적 정서이다. 그러한 욕망과 정부의 책임 사이의 타협점을 찾는 노력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현상 유지로 회귀한 모양새가 됐다.


 의료 서비스 수요가 많은 도시와의 거리에 비례해 깊어지는 의료 공백은 자본주의 체제에선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의료 공백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선 부조리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본의 우세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현실은 지방 소멸이다. 이를 막기 위한 각종 구제책이 쏟아진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한 지방 소멸을 막겠다는 거시적 목표 또한 달성할 수 없다.


 공공의료가 시장원리와 국가의 책임 사이를 헤맬 때 의료 공백은 개인의 희생으로 채워지고 있다. 병원을 방문할 수 없는 도서벽지의 환자들을 의사들이 왕진 가방을 들고 직접 찾아간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한시적이고 왕진의 수가도 높지 않다고 한다. 여러모로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의료 행위인 샘이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 소멸을 막는 일이 시대적 과제이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일이 민주주의 국가의 의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사회적 자원이 향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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