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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살아가는힘 May 25. 2021

사라진 한 끼의 여유

『위대한 엄마들의 유희 시간』 4장

먹이는 자의 일상      


“맛있는 거 먹고 싶다”

 

주변 엄마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면 빠지지 않는 게 맛있는 음식이다. 잠시나마 아이를 잊게 해주는 화려한 인테리어의 브런치 집에 있으면 그렇게 신이 났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예쁘게 정성껏 해주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순간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첫째의 이유식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먼저 쌀가루로 미음을 지어 아이의 입에 조금씩 넣어 줄 때만 해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뚝닥 뚝닥 이유식을 만들어낼 때 아이가 잘 먹어주면 너무나 신기했고 나 자신이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난 왠지 좋은 엄마 같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쌀가루와 고기, 그리고 다른 재료가 더 들어가는 시기가 오면 해야 할 일들은 곱절이나 많아졌고, 만들고 먹이고 치우는 일의 쳇바퀴를 돌다 아이가 자면 끝이 나는  일상이 이어졌다. 비싼 유기농 야채와 사기 전에 고민하게 되는 영양 듬뿍 한우를 넣어 만든 홈메이드 이유식을 아이가 한입도 대지 않는 날이면 뚜껑이 열릴 만큼 화가 났다. 결국에는 더 다양한 재료를 넣은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인다는 이유를 대가면서 시판 이유식을 들이는 걸로 첫째의 이유식 준비는 막을 내렸다.

이렇게 아이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이려는 노력들과 달리 내 식사는 정해지지 않은 게릴라전으로 이어졌다. 내 식사를 어찌어찌 차려놓아도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먹는 것보다 쉬는 것을 택한 날도 많았다. 이런 날들이 언제까지 이어졌을까? 많은 엄마들(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엄마들의 경우)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자기 혼자만을 위한 식사는 잘 챙기지 못한다. 이 사실은 일주일 동안 자신이 먹은 음식을 찍어보는 활동을 통해 드러났다.   

   

먹는 자의 생각     


내 식사의 내용을 돌아보면서 어렸을 때 엄마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의 경우에는 약간은 과한 스타일의 보통 엄마였다. 마늘이 몸에 좋다면서 삼계탕에 닭반 마늘반을 넣고 하셨는데, 삼계탕이 아니라 마늘탕이 되었던 사건이 가장 생각난다. 과자와 간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빈속에 과자를 먹으면 속에 다 끼고 얼굴에 모가 난다며 공포 작전도 피셨던 엄마. 커오면서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약간의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는 감내해야 하면서 엄마에게 눈치 보이는 일이었고, 뭔가 당당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 내 아이들은 먹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요즘 우리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일은 사과이다. 별 이유는 없이 그냥 맛이 없다고 한다. 잠시 생각해보니 아침에 먹는 사과가 좋다는 말에 아이들에게 먹도록 강요했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좋은 거니까 무조건 먹어.’ 

부모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상하게 좋은 거니까 꼭 먹으란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먹는다는 것. 그리고 소화시킨다는 것은 우리 몸을 유지시키는 아주 중요한 기능이다. 현저하게 적은 음식을 먹거나 갑작스럽게 폭식을 하거나 특정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거나 먹고 난 후에 죄책감과 우울감을 느낀다면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먹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섭식장애는 대부분 심리적인 이유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자라면서 식탁에서 무엇을 소화시키려고 노력해왔을까?        

    

사라진 한 끼의 여유     


수면을 수월하게 기록했던 지난주와 달리 한 끼를 기록하는 과제는 이상하게 해내기 힘들었다. 내가 먹는 음식을 기록하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우리는 겨우 찍었던 사진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첫 번째는 내가 차린 밥상은 나의 한 끼 식사로 찍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로 밖에서 누군가에 의해 차려진 음식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마저도 찍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기에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에 잠겼다. 공통된 생각은 하루에 온전한 한 끼를 제공하는 시간은 가족들을 먹일 때이고,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내 몫이기에 그 시간은 사진 찍을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가족들을 위한 식사에 제대로 된 건강을 생각한 음식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음식 준비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기보다 엄마의 몫이라는 짐이 있었다고 자각했다. 또한 이런 먹고 먹이는 활동들의 짐이 너무 무겁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을 위한 식사는 잘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는 것에 반면, 

혼자 있을 때는 대충 때우고 마는 먹는 엄마들의 한 끼 풍경의 불균형은 어디서 왔을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은 이기적이라는 무의식적 사회적 규율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살아왔던 엄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은연중에 따라 사는 것일까? 우리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건강하게 균형 잡힌 음식으로 아이를 잘 키워한다는 믿음과 먹고 먹이는 문제의 모든 책임이 엄마에게만 있다는 편견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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