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바에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술을 시켜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단발머리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대머리 바텐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재즈를 좋아했다.
그녀는 대화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음악에 관하여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음날 나는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가장 좋아하는 재즈 곡을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글쎄요. 그쪽은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Flamingo(플라밍고)'를 좋아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유는요?"
"첫 시작의 도입부를 들어보시면 바로 이해하실 거예요. 색소폰 연주가 정말 좋은 곡이거든요."
그녀는 잠시 나를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꼭, 들어보세요."
그녀는 술잔을 잠시 들었다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도 색소폰 좋아해요."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혼자 재즈를 듣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대화라..."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 가사는 없지만 각각의 악기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악기들의 대화."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대화하시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내가 물었다.
"좋죠, 대화. 단, 깊이 있을 때만요."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 깊이면 될까요, 한 3M?"
그녀가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흘긋 쳐다보고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나는 멋쩍은 듯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 죄송합니다. 장난이었어요."
나와 그녀 사이에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사실 몇 주 전부터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 걸 쭉 지켜봐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지나칠 정도의 차분한 태도와 말투로 내게 대답했다.
"알아요."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알고...계셨군요."
"모르는 게 더 이상했을걸요. 너무 빤히 쳐다보셨어요, 저를."
"제가 그랬군요." 하며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괜찮아요. 그래서 오히려 낯설지 않았으니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궁금했거든요. 어떤 사연이 있길래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술을 시켜 마시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죠."
그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단지, 평범한 일상의 루틴 같은 거예요. 왠지 이곳을 오지 않고 하루를 끝내면 죄책감이 드는 그런...?"
"재밌네요."
나는 더 이상의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의 대화는 또다시 한동안의 정적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 또한 큰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나는 둘 사이의 정적이 숨 막힐 정도로 무르익어 갈 때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일은 우리 같이 대화 안 할래요? 술보단 커피 한잔하면서. 좀 더 깊이 있게."
그녀는 침묵을 유지한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흔들리는 내 두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내게 약간의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좋아요, 커피 한 잔 정도는. 어디서 만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