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꽃 한 송이

by 김진용


너는 한겨울 눈밭을 뚫고 나와 세상을 비추는 보라꽃 한 송이다.


너는 봄에 피는 꽃들처럼 화려하지만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닌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보라꽃 한 송이다.


너는 칼같이 날카롭고 매서운 겨울바람과 매일 맞서 싸워도 언제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보라꽃 한 송이다.


사람들은 무심코 너를 지나쳤다.

사람들은 그렇게 너를 무시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너를 얕보았다.

사람들은 심지어 너를 짓밟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너의 그 강인함을.

너의 그 순수함을.

너의 그 끈질김을.

너의 그 따뜻함을.


내가 바라본 너라는 보라꽃은 잔잔했지만 한결같았고 차가움 속에 더 큰 따뜻함을 지닌 꽃송이였다.


내게 느껴진 너라는 보라꽃은 수수하지만 우아했고 흔들림 속에서도 정조를 지키려는 꽃송이였다.


그리하여 나는 잊지 못한다, 너라는 보라꽃을 발견한 그 순간을.

그래서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여태껏 나를 기다려준 너에게.


혹여나 피어오른 그 여린 꽃가지 한 송이가 꺾일까 두려워 나는 아주 조심스레 눈밭에 발을 내디뎠다.


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모르는 척 나를 기다렸다.


마치 나를 처음 본 것처럼 그 어떤 움직임도 없이 내가 네게 다가오기를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내 발걸음이 눈밭을 헤치고 너라는 보라꽃 앞에 다다랐을 때, 너는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나를 향해 활짝 꽃을 피웠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동안 얼마나 시려웠을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동안 얼마나 아파했을까.


나는 양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날카롭게 얼어붙어 너를 둘러싼 눈밭 위로 나의 두 손을 살포시 포개어 놓았다.


네가 아파했을 가시 같은 눈밭을 녹이기 위해서,

네가 견뎌냈을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네가 마주했을 사막 같은 고독을 끝내기 위해서,

네가 싸워왔을 전쟁 같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가시 돋친 눈밭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씩 드러나 얼어붙은 흙밭에 몸을 숨긴 너를 바라보며 활짝 핀 네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동안 혼자 많이 힘들었지. 이제는 괜찮을 거야,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할게."


너라는 활짝 핀 보라꽃 한 송이는 불어오는 바람을 벗삼아 내게 고개를 끄덕이듯 꽃잎을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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