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의 그 소녀는 언제나 그 길을 혼자 걸었다.
스스로 혼자를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홀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녀의 발걸음은 투박했으며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 차가웠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점점 멀리했다.
도도하고 차가운 그녀의 모습을 거부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급기야 누군가는 그녀를 향해 침을 뱉고 욕했으며 심지어는 그녀를 짐승 취급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다.
언제나 올바른 자세를 유지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내었으며 변함없이 자신을 믿었다.
소녀는 그렇게 홀로 걷는 길 위에 내딛는 발걸음이 하루하루 점점 익숙해져갔다.
단발머리 소녀의 하루는 매일 시간이 축적되듯 쌓여갔고 조금씩 단단한 바위처럼 굳어갔다.
하루에서 한달로, 한달에서 일년으로, 일년에서 십년으로 점차 단단함의 정도는 강해졌다.
그날도 똑같았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일상과 시간들이 쌓여져가는 중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아침을 맞이해 샤워를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한 뒤 일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매일 아침 마주치는 길고양이들과 인사를 하고 일터로 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점심을 먹은 뒤 또다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그녀는 힘들어했다.
평소와는 다른 몸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고 일터의 동료들을 포함해 다른 이들의 시선이 평소보다 버겁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투정이 여느 때보다 거슬리듯 날아와 귓가에 꽂혔고 다른 이들의 대화 소리가 마치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날카로운 칼처럼 들렸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유치원을 떠났다.
그녀의 동료들 또한 하나 둘 일터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마지막으로 유치원 문을 나섰다.
그날 저녁, 단발머리 소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평소보다 거리는 한산했고 날씨는 쌀쌀했으며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소녀는 계속해서 걸었다.
걷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횡단보도 신호등의 깜박이던 초록불이 꺼지고 빨간불이 켜져 그녀가 무겁게 내딛던 발걸음을 멈췄을 때, 소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쏟아지는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녀를 위로하거나 걱정 해주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향하던 곳을 향해 그녀를 지나쳐 걸어갈 뿐이었고 대부분 핸드폰을 꺼내 네모난 화면만을 응시하며 그녀를 무시했다.
그렇게 대략 십여 분이 흘렀을까, 그녀는 덤덤히 두 눈에 맺힌 눈물을 닦고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횡단 보도는 파란불로 바뀌기까지 삼십초 가량이 남아있었다.
단발머리 소녀는 다시 차갑게 표정을 뒤바꿨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때, 소녀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무언가를 한 손에 들고 반대편 횡단보도 정중앙에 두 발을 내디딘 채 홀로 서 있는 남자였다.
해가 진 저녁이었던 탓에 그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소녀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으로 그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었다.
단발머리 소녀는 앞으로 걸어갔다.
반대편에 서 있던 그 남자 또한 앞으로 걸어왔다.
소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차가운 표정을 얼굴 전체에 묻히고 전진했다.
그런데 그 순간, 반대편에 서 있던 그 남자가 조금씩 빠른 걸음으로 단발머리 소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를 계속해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걸어왔다.
그러고는 곧이어 단발머리 소녀 앞에 다다른 그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물건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조용히 말했다.
"이걸로 닦아요."
남자의 손에는 많이 닳은 듯 보이지만 곱게 접힌 하얀색 손수건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