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를 만나다
그렇게 며칠을 몇주를 반복했을까. 두더지는 마치 자신이 늘 해왔던 일인것처럼 손에 익혔다. 아침이 되면 차를 끓여 한잔을 마시며 오늘 얼만큼 어느정도 정리할지를 지켜보았고, 그것을 지키지도 지키지 않은 적도 있었다. 식사를 중간에 챙기고, 밖에 음식을 구하러 다녀오고, 중간에 오리를 만나면서 계속해갔다. 마치 그 일이 남겨진 숙제인 것처럼 그냥 했다. 이제 어느 덧 한눈에 보기에 분류가 되어가고, 그 분류된 짐들에 이름이 붙고, 이름이 붙은 짐들이 장농안에 저마다 저 자리에 안착해갔다. 버리기도 많이 버렸고, 전처럼 무언갈 만들기도 했다.
문득 창 밖을 바라보니 따뜻한 햇살이 유리창을 두드리듯이 새어나와 봄바람에 달그락거렸다. 밖에는 어느새 꽃들이 따뜻한 기운을 반기듯이 몽우리를 피우고 있었고, 못보던 곤충도 많이 보였다. 이제는 집 안보다는 밖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두더지였다.
문득 발 밑이 간지러운 두더지는 밑에서 소똥구리를 발견했다.
- 어이구!
- 조심해야지!
다부진 쇠똥구리는 동그랗게 만 소똥을 손에 굴리고 있었다.
- 쇠똥구리야 뭘하고 있니?
- 소똥을 굴리고 있지
두더지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 이 소똥은 왜 굴리는거야?
- 우리의 먹이니까 계속 굴리는 거야. 합쳐서도 굴리고 중간에 먹기도 하고 또 굴리고 또 굴리는 거야
- 아 그냥?
- 그치 그냥 굴리는 거야 우린 이게 일인걸. 아니 일도 아니지. 굴리는 건 그냥 우리가 하는 일상이지
쇠똥구리가 지나간 자리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두더지는 생각을 정리하더니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 책상에 자리해 무언가를 적고 그리고 한참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 곳에는 오늘 만난 쇠똥구리의 쇠똥 경단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동그라미 몇개가 그려져있고 과일종류를 잔뜩 목록화 해놨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자리에서 두더지는 다시 쇠똥구리를 만났다.
- 두더지 안녕
- 쇠똥구리 안녕! 너에게 물어볼게 있어.
- 뭔데?
- 너처럼 굴리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가게를 열까 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동그란 경단처럼 굴릴 수 있어?
- 오 아이스크림 가게 좋네! 글쎄.. 우리는 손으로도 굴리고 발로도 굴리고 매일 일상이 이래서 특별히…
- 처음부터 동그랗게 잘 굴렸니?
- 아니지, 모양도 엉성하고 흐트러지고 너무 단단하기도 물렁하기도 했지. 근데 결국 계속해서 굴리면 모양을 잡아가더라고. 그러다가 점점 모양이 잡히는 시간도 금방 오고! 계속해서 하다보면 네 손이 아마 알려줄거야.
- 응 고마워
그 길로 두더지는 자신의 집으로 향해서 만들어놓은 아이스크림을 스쿱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굴리고 또 굴리고를 반복하면서 동그란 경단 모양이 되기도 했지만, 물러서 모양이 흐트러지기도 쉬웠다. 모양이 잘 흐트러지면 아이스크림의 재료를 달리하고 다시 반죽하듯 굴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동그란 경단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느정도 손으로 익혀갔다. 하지만 재료를 신경쓰지 않거나 스쿱의 모양을 신경쓰지 않으면 다시금 망가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두더지는 익힌 손의 감각을 믿으며 스쿱안으로 아이스크림을 굴리고 굴렸다. 삽을 잡았던 굳은 살 박힌 손은 이젠 스쿱을 이리 저리 잡아가고 있었다.
다음 날 두더지는 자신의 창문 밖에 서툰 글씨로 “공짜 아이스크림”이라고 붙였다. 이를 본 동물들이 지나갈 때마다 두더지에게 다가왔고, 두더지는 살구, 우유, 바나나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스쿱 안으로 쓱 쓱 굴려 나뭇 잎 위에 올려주었다. 그 모양이 꼭 언덕 위에 뜬 달같기도, 구슬같기도 했다. 그렇게 동그란 경단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선물했다.
이윽고 두더지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가게 이름은 ‘굴리듯이’였다. 전보다 아이스크림의 종류는 다양했고, 때마다 바뀌었으며 맛을 본 동물들은 다시 또 찾기도 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어린 동물들이 자주 찾아왔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단골 손님도 생겼다. 두더지는 해가 뜨기 시작하면 재료를 챙겨가서 늘 가게를 열었다.
- 어? 두더지다!
반가운 목소리는 쇠똥구리였다. 두더지는 너무나도 반가워 목소리를 높였다.
- 쇠똥구리야! 오랜만이야~
- 오랜만이다 우와! 가게를 드디어 열었구나 멋지다. 나도 맛을 보고 싶지만 내 먹이는 여기 ㅎㅎ
- 너 덕분이야. 너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 이제는 동그랗게 잘 굴리고 있니?
- 응 전보다 동그랗게 잘 굴리고 있어
- 그런데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이 왜 “굴리듯이”야?
- 그냥 ㅎㅎ 네가 매일 쇠똥을 굴리듯이, 내가 매일 아이스크림을 굴리듯이 사는게 꼭 그런것 같아서.
사실 전에는 해야만 하는 일이 온통 많았지, 매일 그냥 하는 일이 없었거든. 근데 이제 찾게 된것 같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그냥 매일 하는 게 좋아졌어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쇠똥은 굴려야 맛이지 ㅎㅎ
장난끼 가득 어리게 웃고 지나가는 쇠똥구리를 보며, 두더지는 코로 한 숨을 마시고 내뱉었다. 낮보다 선선해진 공기가 코속으로 들어오고 따뜻한 숨이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두더지는 이제 더이상 굴을 파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들을 대하고 자신의 말을 꺼내는 것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전처럼 짐이 더 쌓이지 않게 자신의 말을 조금씩 하고 있다. 어려웠던 말들은 해볼수록 다듬어지고 가볍게 느껴졌으며, 아침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굴리는 일은 정리하는 일만큼 반복되고 매일 고생이 따랐지만 조금도 지겹지 않았다. 정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휴가를 내고 떠나며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에 여유를 가졌다. 굴을 파던 두더지의 모습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자리를 잡아가는 두더지의 가게 앞에는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 쪽지, 저마다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요청하는 쪽지들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두더지가 쓴 글도 붙어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매일 굴리듯이,
우리도 매일 삶을 굴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