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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Nov 23. 2023

우울에 대하여_1


  우울증. 소리없이 조용히 점령당한다

요즘 육퇴 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웹툰으로도 봤지만 참 재밌게 보고있다. 여러 정신질환이 묘사되는데 우울은 마치 늪지대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출산한 뒤 산후우울증을 겪는데 큰 이유는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환경의 변화일 것이다. 미친듯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눈물이 나는 무망감을 겪기도 하지만, 미비한 우울감이 하루 전반에 걸쳐 퍼져나가 ‘내가 우울한가’를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주변에 ”그때 내가 산후우울증이었던 것 같아“라고 돌이켜 회상하는 이야기를 꽤나 들었다.


최근에 왜 그렇게 모르고 지나가는지 알것 같았다.

잠시나마 우울감이 생겨도 아이가 웃으면 이런 마음을 가진 것에 빚진다. 나를 보고 팔을 휘적거리며 눈은 없어질듯- 입은 활짝- 웃어대면 녹아내린다. 사실 내가 주는 사랑보다 무조건적으로 받는 사랑이 더 크다. 때문에 이런 우울감은 기후라 치고 넘어가고, 당장 급하게 해야할 육아가 닥쳐서 넘어가고, 아이를 보느라 넘어가고, 아이가 자고나면 풍선에 바람빠져 소파에 널부러져 눈으로 입으로 육퇴 시간을 소비해내기 바쁘다.


문득 그렇게 넘어간줄 알았던 우울감이 내 어깨를 누르고, 마침내 무거워 주저앉게 되는 경우는 매우 사소하다.


아기가 응가를 해서 치우다 매트에 옷에 묻어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 다 치우고 돌아오니 빨래가 다 됐단다. 빨래를 다하고 오면 아기가 이제 졸리니 칭얼거리고 칭얼거리는 아기랑 씨름하다 재우고 나오면 이번엔 건조기가 다 됐단다. ㅎㅎㅎㅎㅎ


한번은 육퇴후 아기 젖병을 설거지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작은 젖병솔로 박박 문대기다 젖꼭지가 뚫어진 적이 있다. 텅 비어버린 머릿 속에 늦게 입력된 현 상황을 인지하다 눈물이 펑하고 터져버리기도 했다.


많은 순간이 뜻대로 되지를 않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한번- 두번- 세번은 더 움직여야 한다. 그러한 고비를 몇번을 넘겨야 하루가 간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기질이 아니라 답답하거나 감옥같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반대로 하염없이 혼자있고 싶어진다. 창밖에 하늘을 보고, 멀리보이는 산을 보고,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자유로워보인다. 여기서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상상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공황/불안이 목을 조여오는 듯한 증상이라면 우울은 어깨를 누르는 듯한 증상같다. 뛰다- 걷다- 네 발로 긴다. 무겁지만 가야하고 가야하지만 무거워서 마침내 움직일수 없을정도로 무거워지면, 위와 같은 사소한 순간에 털썩 주저 앉아 펑펑 울어재낀다. 그러면 다시 걸을수 있다.


그렇게 걸을수 밖에 없는 건 아기가 주는 사랑에 빚져서 나도 가야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기의 사랑에 나도 보답해주고 싶은 기쁜마음에서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도 시켜서 할수도 없다.



아주 우울한 하루같이 그려지겠지만, 중학생때만큼이나 하루에 많이 웃는다. 작은 몸짓하나에 떨어지는 행복하나 수집하기 바쁘다. 그리고 연애때만큼이나 하루에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나에겐 그런 하루다. 녹초가 되어 걸어가면서도 동전 한닢에도 기뻐날뛰는 어린아이 같은 하루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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