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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Nov 30. 2023

우울에 대하여_3

대하는 자세-뜨개편


 자고로 뜨개인이라면 이정도 단어는 들어봤을 것이다. 함뜨, 째려뜨기, 세탁매직, 푸르시오.


함뜨: 함께 뜨기의 줄임말로 오프라인, 온라인에서 함께 뜨개를 하는 것을 말한다.


째려뜨기: 편물이 고르지 않지만 그냥 눈 째려보듯 안볼란다~ 마음으로 뜬다.


세탁매직: 편물이 제각기 모양이거나 성글게 혹은 좁게 떠진 모양이 세탁하니 매직(마법)처럼 고르게 변한다.


푸르시오: 한참 뜬 편물이 잘못되어(사이즈가 안맞거나, 잘못 떴거나…) 풀러야하는 상황.


나의 뜨개 역사는 그리 길진 않지만, 누가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뜨개는 빠지지 않는 취미다. 임신 전에는 뜨개에 미쳐살았을 정도로 스웨터, 조끼, 목도리, 여름가디건- 반팔 셔츠등 뜨고 입고 다녔다.


임신 중에도 아기의 우주복을 뜨개로 뜨고 만날 날을 고대했다.


내가 뜨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손에서 무언가가 완성되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보암직한 것이 완성되는 영역이 내 손 안이라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아기를 낳고는 뜨개를 하지 못했다. 날로 무게가 늘어가는 아기를 안느라 손목은 너덜너덜해지고, 아기가 자는 시간에는 나 쉬기 바쁘기 때문에 취미? 그것은 사치였다.


다시 뜨개를 시작한 건 한순간이었다. 아기가 낮동안 내복 위에 입을 조끼가 필요했는데 수면조끼는 너무 길고 짧은 조끼는 내눈에 차지 않았다. 어? 그럼 내가 떠볼까 하는 찰나의 생각에 눈이 번뜩였고, 홀린듯이 실을 주문했다. 실 사이즈는 굉장히 작으므로 금방 떴지만, 오랜만에 도안없이 뜨는 거라 푸르시오를 두번이나 반복했다.



그치만 아이 통잠 재우는 밤에 짬내어 틈틈히 했더니 금방 완성했다. 아 그래- 이맛이지 이래서 내가 뜨개를 했었지. 뜨개를 하는 밤에는 육아에 지친 우울감을 달랠 술도 간식도 필요없었다. 오로지 손끝에서 완성되는 뜨개물이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그런데 아기한테 입혀서 딱 맞는 핏을 보고있노라니 극락- 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내 시간이었다. 뜨개를 하는 동안에는 아기가 아닌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웠다. 그렇게 꽉 채운 시간의 산물로 아기가 매일 조끼를 입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한츰 유해지고 풍요로워진다. 풍요속 빈곤이란 말이 있듯 그 반대인 우울 속 하찮은 행복을 찾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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