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조력자편
엄마가 미안해
아이 의자와 유아차를 보기 위해 매장을 다녀오는 길, 차 안에서 인내심이 바닥난 아이는 차가 떠나가라 울어댄다. 장난감으로 또 쪽쪽이로 달래봐도 안된다. 울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달래면서 결국 오늘도 말한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애기 힘든데 데리고 나와서 미안해”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남편이 아기한테 말한다. “오늘 수고했어, 그치만 엄마아빠도 수고했어~ 엄마아빠거 보러 간거 아니고 우리 아가꺼 보러간거였어”
나는 배운 것도 아닌데 너무나 쉽게 아이한테 사과하는 버릇이 있다. 이제 6개월, 뭘 알지도 모르는 나이이니 그저 엄마 맘이 불편해 사과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남편은 우리는 우리고, 아기는 아기라는 가치관이 분명해서 나처럼 죄책감(?)을 쉽게 가지진 않는다. 그런 양육 태도가 감정적인 나에겐 퍽이나 도움이 된다. 고립되었다면 남편의 “안미안해” 권법으로 쉽게 환기되지 못했을 듯하다.
아이를 키울 때 나의 힘으론 벅찰 때가 많다. [자존감에 대한 고찰]에도 적었듯, 난 더욱 엄마에게 손을 벌릴 사람이 못된다. 그럼에도 남편이 자리 비우면 엄마 생각이 먼저 난다. 최근에는 엄마가 출근하기 전 잠깐 들려 아기를 같이 봐주었는데 고 몇시간이 참 수월했다. 그 짧은 시간을 너무나도 고마워 하는 나와 그걸 고마워하는 날 짠하게 보는 엄마. 엄마의 조력은 없어선 안될 배터리다.
엄마 못지 않게 필요한 건 남편의 도움이다. 남편은 회사 스타일 상 재택근무형태로 근무하는데, 나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간혹 미팅이나 워크샵으로 출근을 하면 그 빈자리가 굉장히 크다.
설거지, 청소, 빨래, 분리수거등 집안일을 남편이 짬날때 분담해서 나누고, 회사와 집이 문 하나 차이라 출퇴근-반차를 목메어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리고 뭣보다 분리불안이 시작되면서 내가 눈 앞에 사라지면 울어버리기 때문에, 남편한테 잠깐 맡기고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을수 있다.
반면 단점은 남편의 피로도가 높고,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일을 봐주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그리고 일의 특성상 주말에 근무해야하는 경우가 잦다. 또 설렁설렁 애를 보고싶거나, 애가 울어재끼면 눈치보인다. 그럴 땐 혼자 아이와 있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러한 단점을 감내하더라도 집 안에 함께 하는 동지가 있다는 건 내게 큰 힘이다. 지금도 “엄마가 미안해”를 시전하고 겨우 아기를 재우고 나오니, 남편이 자신의 커피를 타면서 내 커피도 준비해주었다.
엄마의 조력과 남편의 동지 없이 홀로 육아했다면, 지금의 우울감은 나를 더 짖눌렀을 것이다.
대학원에서 우울감은 화살표가 안으로 향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화나 슬픔등의 발화되어야 하는 감정들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또아리틀듯 우울로 자리 잡는다. 그렇기에 발화해야할 감정을 태워야 하는데, 최근 들어 생각에 그 발화점을 잡아주는 것이 나자신만큼이나 주변인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밤늦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배우자, 틈틈히 함께 고충을 나누는 친구들, 응원하고 조력해주는 가족… 그들 앞에서 꺼내어보는 감정들이 막상 꺼내보면 별게 아닐지라도, 안에 있으면 곪는 법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꺼내어 보는 오늘은 내일보다 덜 무거울 것이다.
오늘도 엄마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