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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Dec 11. 2023

우울에 대하여_5

누가 제게 마취총을 쐈나요


  육아를 하다보면 잔 움직임이 많아진다. 앉았다 일어나기, 누웠다 일어나기, 손뻗어 물건 집기, 아기 안고 왔다갔다하기.


임신 전에는 걷기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터라 왠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녔다. 운동을 즐거워하진 못했으나 틈날때마다 뒷 언덕배기 산에 산보다니곤 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이후로 활동량도 현저히 줄었고 출산 후에도 전처럼 활동하지 못하니 내 기초대사량은 바닥이 났다.


대게 낮잠을 “잠이나 자볼까-”하는 마음으로 눕는다면, 육아하면서 낮잠은 누가 마취총을 쏜 것마냥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드는 모양새다.


아이를 수유하고 졸음이 쏟아져 남편에게 맡기고 침대에서 송장자세로 뻗어 기절한다. 아이가 낮잠자는 틈에 남편과 모처럼 커피를 마시다가도 졸음이 쏟아져 미안을 외치며 침대에 뻗어든다.


핸드폰 배터리 충전대같이, 마치 필수적 과정처럼 낮잠을 자야 그나마 남은 시간을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문득 산보다녔던 체력과 지금 체력을 비교해보니 서글퍼졌다. 분명 지금의 내가 더 바지런하게 움직이고, 앉아있을- 누워있을 틈이 없는데 왜 체력은 저질이 되었는가.


아기의 수면 텀과 수유텀이 얼추 맞춰가던 나날 중 어느 날, 남편이 운동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처음에 몸도 회복 안됐는데 무슨 운동이냐며- 그 시간에 쉬겠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남편이 고정된 시간에 아이를 봐주고 나가 숨을 트일 시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운동을 나가게 됐다. 아직 몸 회복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기에 요가를 선택했고, 지금까지도 잘 다니고 있다.



무게를 드는 피트니스는 생각도 못했고, 재활을 돕는 필라테스는 전에 다니던 기억이 안좋았고, 임산부때 다녔던 요가 클래스 때 전신이 풀어지는 좋은 경험이 있었기에 선택했다.


하지만 단순 스트레칭과 몸이 풀어지는 이완 동작만 있지 않았다. 근력을 요하는 자세도 꽤 많았고 손목에 무리가는 동작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당당히(?) 하지 않고 있으면 선생님이 오셔서 순화된 동작을 가르쳐 주셨다.


사실 요가에 대해서 할 얘기가 좀 더 있어서 다음글에 이어 나누고, 운동 시작이라는 본론으로 돌아와 하길 잘했다싶다. 그럼에도 체력이 늘었거나 체중이 감량됐었느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초입에 마취총을 맞은 듯 낮잠을 자는 건 요즘도 일상이다. 오늘도 한대 맞았다.


우울을 다루기 위해서는 화살표가 나로 향한 것들을 밖으로 분출해야하는데 그 중 가장 좋은 것이 운동이었다. 날씨가 좋은 계절이거나, 이사오기 전 집같았으면 내가 좋아하는 산보를 했을 것이다. 돈이 드는 것은 아쉽지만 정기적으로 스스로에게 운동을 약속 해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나를 한 낮 잠을 자기 위해 침대로 부른 것처럼, 내가 나를 매트 위로 불러 운동을 시킨다. 그리고 나면 우울했던 일상에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생긴 기분이다. 실컷 놀다가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그래서 이 운동 시간을 남편의 배려가 닿는 시간까지 계속 가질 예정이다.


나를 침대 위로 부른 사람 나요,

나를 매트 위로 부른 사람 나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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