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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Jan 24. 2024

엄마로써 살기도 벅차.

투사
: 방어기제 중 하나로, 자신의 욕구를 투영하여 판단하는 것.



카톡!

“딸, 작은 엄마 어머니가 돌아가셨데 통화좀 해줘” 아빠의 짧은 카톡 내용에 내가 폭팔한 것은 비단 오늘만 일때문이 아니었다. 아빠는 줄곧 가족의 일에 나를 앞장세웠다.


큰이모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이모의 상심이 큰 것이 꼭 내가 위로를 해줘야하는 일처럼 말하고 통화를 요청했다. 결혼식에 축의금을 크게 내어준 고모에게도 통화해주라며 신혼여행 첫 날부터 연락이 왔다. 아, 배를 째고 아이를 출산한 다음날 병실에 할머니며 이모며 죄다 통화시킨 일도 있다.


친척의 일뿐이랴 엄마가 아플 때, 힘들 때 “엄마한테 전화해줘”를 달고 살았다. 오래 된 직장을 퇴직하는 엄마에게 신랑과 나는 꽃다발을 준비하려 했었다.


난 안그래도 가족 잘챙기는 편이었다. 생각이 있는데, 꼭 나에게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면 어지간히 불편했다.


내가 폭팔한 날에는 아기와 신랑 나 모두가 코로나에 걸렸었다. 아빠는 우리가 코로나에 걸린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리 상태보다 친척 일에 날 앞세우고 있었다.


전화를 시키는 아빠에게 난 결국 폭팔했다.


내가 뭐 맡았어?




살아가보니 나에게 주어지는 여러 이름표가 있다. 누나, 딸, 아내, 며느리, 엄마, 선생님, 친구.


그 중 어느 하나를 버릴수 있다면 딸이란 이름표를 아빠앞에서 보란듯이 구겨버리고 싶을만큼 화가 났었다. 전에도 글에 적었지만, 철없는 우리아빠의 잘못도 반- 구원자 역할을 맡아 k-장녀의 길을 자처한 내 잘못 반이었다.


그동안은 아빠가 전화하라고 시킨 모든 친척 일은 툴툴거려도 다 해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 창시자


 아빠는 앞장서서 받는 인정욕구가 높은 편이었고, 그 욕구를 항상 나에게 투사하여 내가 이 역할을 해내길 바랬다.


번외로 착한 딸을 나에게 수여한 우리 엄마는 “착한 며느리 상”을 근면상받듯 받고 있었다. 거절못하고 착한 성질의 엄마는 가족 일에 오지랖이 넘치는 아빠의 콜라보로 더 고생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지금도 엄마가 나에게 눈감고도 줄줄 읊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큰아빠, 큰엄마. 아기를 낳았는데 우울증때문에 도저히 못한다는 큰아빠의 일상을 듣고, 아빠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당시 7살 나와 3살 동생을 데리고 그 먼 곳을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왔다. 지금은 서로 사이도 안좋아 얼굴도 안보는 사이인데, 엄마는 한탄하듯 그 이야기를 자주 나에게 꺼내놓곤한다.


진작 느끼긴 했지만 그 때 직감했다. 아 엄마는 나에게 착한 사람을 아빠는 인정받는 사람을 나에게 수여했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사람 욕구와 인정 욕구를 투사한 셈이었다.


오늘은 엄마보다 아빠에게 집중하자면, 아빠는 꾸준했다. 아기가 신생아시절에 우울감이 최대로 찍어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시절, 남동생이 할일없이 집에만 있자 아빠는 동생을 불러 집안일을 시키라며 오지랖을 부렸다. 역시나 잘지내는지, 요즘 어떤지 물어보는 따뜻한 중간 내용 없이 서두에만 집중하는 모양새가 그저 아빠였다.


변하지 않는 아빠에게 변하지 않는 딸로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아내였을 때는 적어도 중간에 발을 쓱 빼기만 하며 어둘러 떠났지만, 이제는 완전히 착한 딸에서 떠나와야겠다.


이기적이게 느껴지려나? 그래도 된다. 난 지금 30년 넘게 살아온 역할을 뒷장으로 넘겨 앞 장에 반짝거리는 아이를 키워내야할 엄마역할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챕터가 넘어왔으면 그 챕터에 충실해야 책이 흘러가고 완성된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라고 수긍하지만, 나는 아빠에게 그래야하는 딸에서 이젠 떠나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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