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벚꽃이 피고 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날리고, 햇살이 닿으면 분홍빛이 더 환해진다. 벚꽃의 시간은 길어야 열흘. 그 짧은 시간 동안 봄은 가장 화려하게 자신을 내보인다. 마치 "나 여기 있어, 잠깐만 봐줘"라고 말하듯 말이다.
올해는 그 말에 응답해보자.
바쁜 건 안다. 다들 정말 바쁘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마감은 늘 촉박하고, 하루는 언제나 짧다. 그 안에서 벚꽃을 보러 간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딱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벚꽃 아래서 보내는 20분이 나머지 시간을 망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20분이 하루 전체를 다르게 만들어준다. 아름다운 것을 본 사람은 눈빛이 달라진다. 잠깐 멈춰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할 때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 가벼움이 오후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쉬는 게 죄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게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다시 달리게 만드는 충전이다. 굳이 유명한 벚꽃 명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동네 골목 어귀의 벚나무 한 그루도 충분하다. 출근길에 조금 돌아가도 좋고, 점심시간 10분만 일찍 나와도 된다. 하늘을 향해 활짝 핀 꽃가지 아래 잠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달라진다.
아이 손을 잡고 걷는다면 더 좋다. 벚꽃 아래를 걷는 아이의 얼굴은 어떤 사진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기억이 쌓여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봄이 오면 괜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벚꽃 한 번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살다 보면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봄날의 골목, 바람에 꽃잎이 날리던 그 찰나, 아무 말 없이 같은 하늘을 올려다봤던 그 시간. 그런 것들이 쌓여 삶이 된다.
올해의 이 봄은 한 번뿐이다. 벚꽃은 내년에도 피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이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딱 20분만 내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조금 느리게 하고, 고개를 들어 꽃을 보자. 분홍빛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장면을 눈에 담자. 올해는 그냥 지나치지 말자.
벚꽃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다가가면, 봄은 기꺼이 가장 환한 얼굴로 맞아준다.
바쁜 하루 중 잠깐 멈출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더 멀리 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