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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도리 May 18. 2024

우리 딸이 폐렴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12개월이 막 지난 해도에게 갑자기 고열이 찾아왔다. 이 날도 어김없이 일상적인 체온을 재 보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체온이 37도 후반이 나오더니 곧장 38도를 넘는 것이 아닌가. 혹시라도 체온계가 잘못되었을까 싶어서 내 체온을 재봤더니 정상이었다. 건전지를 바꾸고 몇 번을 더 재 보았다. 역시나 38도 이상이 나왔다. 늦은 시간이고 상당한 고열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였다. 그리고 시원한 손수건으로 온몸을 덮어 주었다. 몇 시간이 지나니 체온은 37도 초반으로 떨어져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다.



돌치레?


돌치레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돌이 지나면서 엄마에게 받은 면역력이 아닌 자신의 면역력으로 세상을 마주하다 보니 생기는 증상인데 주로 고열이 나타난다. 돌치레의 경우에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기보다는 가벼운 감기증상과 고열증상을 보이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들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체온계에 38 이상의 숫자가 보이는 순간 모든 판단력은 사태가 심각함을 전제로 하게 된다.


병원을 가다


돌치레인지 아닌지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고자 소아과를 찾았다. 소아과에서 체온을 재고 키와 몸무게를 확인했다. 너무 의젓한 해도를 보면서 내심 뿌듯했다. 이제까지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다른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해열제를 주면서 열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 하셨다. 다만, 열이 올라가면 폐렴으로 진전될 수 있기 때문에 열 체크를 주기적으로 하라는 말도 덧 붙였다.

그리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단순 감기라고 어느 순간 나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빨간 온도


새벽에 해도가 깼다. 머리에 땀이 많이 나서 닦아주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해도의 귓속에 체온계를 넣고 측정 버튼을 눌렀다. 갑자기 빨간불이 떴다. 너무 깜짝 놀라 아내를 급히 깨우고 다시 양쪽 귓속을 통해 체온을 쟀다. 38.9도, 그리고 39.5도.


잠이 확 달아났다. 급히 불을 켰다. 시원한 물에 수건을 적시고 해도의 몸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해열제를 먹였다. 다행히 해도가 처진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평소와 행동과 표정이 다르지 않아 더욱 미안하게 느껴졌다. 부모의 마음은 이런 건가보다.


응급실을 가야 돼?


응급실을 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먼저 119에 전화해서 인근 응급실이 가능한 병원을 확인했다. 이제는 응급실을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다. 물론 응급실에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병원에 데리고 가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내는 이미 해도가 막 100일을 지났을 때 코로나 고열로 인해 응급실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인도에 있는 바람에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가끔 그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들을 때 아찔한 느낌이 든다. 얼마나 상황이 긴박했는지 말이다.


결론적으로 응급실을 가지 않고 날이 밝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했다. 밤새 해도의 체온을 체크하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다행히 체온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38~39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해도에게 X-ray 촬영을 하자고 했다. 그 결과.. 해도의 폐에서 하얀 부분이 보이면서, 폐렴으로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입원을 권했다. 갑자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단순 감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폐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결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째서 해도가 이런 증상들을 보이고 있는 거지?'

'어디 가서 누구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

'누구 탓이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하나 현재 상황에 도움 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해도의 입원을 망설이는 동안 병실이 만실이 되었다. 우리는 입원을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현재 해도의 행동이 평소와 변화가 없고 기침이나 열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면 증상이 호전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해도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긴 후 따듯한 물을 자주 마시게 했다. 충분한 영양소 섭취도 중요하기 때문에 해도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당분간 먹이기로 했다. 모유수유도 줄여나가는 단계였지만 이번에는 원하는 만큼 물려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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