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에 일조했는지도 몰라 (히말라야 시리즈 2)
#1. 산에서의 생활은 단순 명료하다
처음엔 히말라야 트레킹이 예상보다 할만했다. 우리의 하루 일정은 대략 이랬다. 아침 7시경에 일어나 로지(lodge)에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어디까지 갈지 지도를 보며 확인했는데, 사실 유명한 코스여서 정해져 있는 대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아침 8시경, 늦어도 9시까지는 로지를 나선다. 거기서 서너 시간 정도 아침산행 후, 점심을 먹는다. 한 시간 정도 먹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산행 후 3-4시경이면 하루 일정이 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지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위험천만해지기 때문이다. 로지에서 숙박을 하며 저녁을 먹고 하루의 피로를 쉬어간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기 전 잠자리에 든다. 산행 시간은 보통 하루에 6-7시간 정도였다.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포터(potter)라는 짐 들어주는 일꾼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네팔 물가가 워낙에 저렴해서 포터를 쓰는 비용이 별로 크지 않았었다. 그 당시, 하루에 오천 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모두 다 그렇진 않았지만 어떤 포터들은 슬리퍼를 신고 앞 뒤로 키의 몇 배쯤 되는 산더미 같은 짐을 웃으며 이고 지고 갔다. 그런 걸 보다 보면 어린 마음에도 어그러진 자본주의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트레킹 당사자는 맨몸으로 트레킹을 하면 되니,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심지어 포터들은 로지를 미리 잡아놓는 역할까지 해주었다. 로지가 있는 지역에 도착해 이리저리 흥정하지 않고 바로 들어가서 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던 것. 하지만 우리는 대학생. 포터가 지나갈 때마다 우와 하면서 눈이 동그래졌지만 돈 내고 짐 들어주는 사람을 쓰는 건 사치였다. 그리고 우리 나름의 자부심이 충만한 때였다. 배낭의 무게에 짓눌리더라도 내 짐은 내가 끝까지 지고 가겠다는.
산에서의 생활은 단순 명료했다. 복잡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트레킹이 좋았던 건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산행을 마치고 나면 그저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음에 감사하게 된다. 속세(라고 표현하니 웃기지만)에서 내가 욕심내고 갖고 싶었던 것들은 여기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있어도 충만한 삶이 가능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매일매일이 내겐 가득 찬 느낌이었다. 내 고민은 점심메뉴 저녁메뉴, 그리고 저녁에 무슨 놀이를 할까, 무슨 보드게임을 할까 정도? 이런 규칙적인 생활로 인한 단순명료함덕에 마음이 오히려 맑아져 갔다.
#2. 친구와 이런 것까지 공유하게 될 줄이야.
해발 3000m쯤 올라갔을 때부터였나, 설산이 가까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공기를 느끼는 게 경이롭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 괴로웠다. 사실은 티베트(해발 4000m)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해발 5360m)를 거쳐 네팔로 왔기 때문에, 고산지대에서의 적응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티베트에서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아주 천천히 가야 했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는 자다가 숨이 잘 안 쉬어져 새벽에 몇 번 깨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도보로 산을 오르니, 고도가 야금야금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해 고산병이 전혀 오지 않았다. 서서히 몸이 고도에 적응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같은 로지에서 인사 몇 번 나누었던 이스라엘 출신 여자애가 새벽에 고산병 때문에 열이 나고 토하고 숨을 못 쉬어서 응급헬기에 실려 이송되었다. 전날까진 괜찮아 보였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뽑기 운에 잘못 걸린 것처럼. 고산병은 고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바로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트레킹을 못하게 되는 건 얼마나 속상할 일일지 상상도 안 갔다.
고산병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고산 지대로 갈수록 배에 가스가 어마무시하게 차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가스가 찼고 뭘 먹으면 그게 더했다. 이 생리 현상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건 내 장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친구에게만 슬쩍 물었다.
“진주야, 나 고민이 있어. 넌 지금 다 괜찮아? “
“응. 너 어디 불편해? 낯빛이 좀 안 좋아.”
“나 배에 엄청 가스차. 죽을 것 같아.”
“어쩐지. 야 그럼 참지 말고 뀌어.”
“몰래몰래 뀌는데, 소리가 좀 그래. 뽕이 아니고 부왁이야.“
“아, 그럼 곤란한데. 난 그 정도까진 아니야.”
“게다가 뀌는 거보다 차는 속도가 훨씬 빨라!”
내 친구 진주는 원래 변비가 심했다. 유산균을 대접으로 들이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나와 디테일은 달랐지만 어쨌든 그 더러운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화장실 가는 타이밍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긴장해서 출발하는 바람에 아침 화장실 패스, 점심 먹고 금방 있으면 또 출발이라 점심 화장실도 패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로지에 있는 화장실은 공용이어서 또 타이밍을 따져야 했다. 물론 우린 화장실이 빈 타이밍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누가 들어가고 나가는 소리를 귀신같이 듣고 서로에게 알려줬다. 나의 청각은 그 시절 제일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와 나의 장은 화장실이 비어있는 타이밍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우리의 상태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 고산지대로 올라와 가스까지 차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더 빵빵해진 것이다. 이렇게 농축된 가스들이 분출되며 내뿜는 소리는 산을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가 되었을 때 한 가지 대책이 생각났다. 대책이라고 명명하기도 민망하지만 ‘협동해서 최대한 많이 질소가스 배출하기’였다. 가스차는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배출하는 양이 잘 따라와 주면 배가 아프진 않을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산행을 하면서 대자연에 최대한 가스를 분출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우리의 방귀를 들키면 민망하니, 신호를 보내면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멀어져 서로 방귀망을 봐주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언니와 웨일스친구 조지, 나와 진주 팀으로 나뉘었다. 왕언니는 걸음이 엄청 빨랐고 조지는 롱다리여서 그 둘이 항상 앞서나가기도 했다. 그들과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벌렸다가 다시 좁혔다가를 반복하며 우리의 슬기로운 배출생활은 계속되었다. 요란한 방귀소리조차 참아주는 그녀는 역시 나의 자랑스러운 솔메이트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자 몸이 적응을 했는지 더 이상 처음만큼 심하게 가스가 차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장은 어땠는지 너무 궁금하다. 그렇게 맑은 설산에 우리처럼 독하고 무서운 비밀을 숨겨놓고 온 사람들이 또 있지 않았을까?
#3. 고도가 높아지면 씻을 수가 없다
해발고도가 몇 미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느 순간부터 로지에서 뜨거운 물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의 산행을 마치고 따끈따끈 샤워를 기분 좋게 하고 쉬는 게 낙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단다. 따뜻한 물을 요청하면 끓여다가 찬물이랑 섞어서 씻어야 해서 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세수와 양치도 겨우 가능했다. 게다가 올라갈수록 로지가 한두 개밖에 없어서 같은 트레킹 코스인 사람을 전부다 그 한두 군데의 로지에서 만나야 했다. 그러니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씻을 물이 더 부족할 밖에. 사실 설산으로 진입하고부터는 몸에서 땀이 안 났다. 그래서 샤워를 못하는 건 참을 수 있었는데, 머리는 너무 감고 싶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머리를 감다가 며칠간 못 감게 되니 기름이 잔뜩 낀 헝클어진 인형머리 같았다. 진주도 마찬가지였다.
"머리 안 감으니까 너무 찝찝하지 않냐?"
"어 완전. 가렵고 죽겠어. 벌레 생길 것 같아. 우리 저기밖에 찬물로 감을래?"
"그러자. 얼어 죽더라도 깨끗하게 얼어 죽자."
그때가 영하 몇 도였을까. 가늠할 수 없는 추위였다. 해발고도는 아마 거의 5000m에 육박했던 것 같다. 만년설을 밟고 있는 곳이었다. 어딜 가나 눈밭. 그곳에서 얼음 녹은 찬물로 머리를 감겠다니. 우리는 가스 분출 때처럼 협동해서 서로 머리 감는 걸 도왔다. 인당 일분 이내로 끝내버리자. 미리 샴푸를 손에 짠 다음, 한 명이 물을 뿌리자마자 다른 한 명이 미친 듯이 문질렀다. 그렇게 최소한의 시간 안에 머리를 감아냈다. 아마 초를 쟀다면 머리 감기 신기록을 세웠을 것 같다. 나와 진주가 머리를 감자, 같은 로지에 있던 외국인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었다. 기이한 광경이었을 거다. 눈밭에서 얼음장같은 찬물로 머리를 감다니, 한국인들 대단하다고 엄지 척. 그 바쁜 와중에도 브이를 놓치지 않는 우리였다. 감은 머리에 바로 고드름이 생겨 식겁했지만 어찌나 상쾌하던지. 남편에게 들은 군대 혹한기 훈련의 체험판을 경험한 것 같았다.
#4. 산에서 읽은 책, 그리스인 조르바
산에서 시간이 이렇게 많을지 몰랐다. 가이드북 말고는 한두 권 정도밖에 읽을 책을 안 챙겨 왔다. 배낭여행이라 짐을 늘리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책을 바꿔 읽기도 했는데 금세 읽을 책은 동이 나버렸다. 다 읽은 책은 한국 식당에 기증해 버렸다. 왕언니는 책을 몇 권 가지고 왔는데, 언니가 다 읽고 몇 번째 읽고 있다는 책 한 가지를 내게 빌려줬다. 이름하여 그리스인 조르바. 여행을 하고 있는 나의 상황과 너무나 맞아떨어졌다. 조르바식의 사고방식은 신선하고 명확해서 읽는 내내 웃음이 피식 나왔다. 20일의 트레킹이니까 아껴 읽어야겠다 싶어 일부러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다. 어느새 나는 조르바에게 깊이 빠져 있었다.
밤이 되면 따뜻한 차를 마시며 조르바를 읽고 왕언니와 공유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언니가 책을 미리 읽었기에 나중에 읽은 내가 이 부분 너무 좋다고 얘기하다가 또 언니의 얘기를 듣고 공감하고 맞장구치고. 내가 사랑하는 내 친구 진주는 현실적인 아이여서 조르바를 한번 읽더니, 이건 내 타입 아니야 하면서 휙 덮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따로 또 같이 하면서 밤의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우리의 청일점이자 롱다리인 조지는 거기서 만난 새로운 외국인들과 음성을 낮춰 대화를 하다가 우리 쪽을 보며 한 번씩 찡긋 미소를 날렸다. 로지의 어두운 주황색 불빛 아래에서 읽는 책도 그곳의 분위기도 낭만을 담고 있었다. 밖은 시리게 추웠지만 우린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렇게 충만하고 평화로운 밤 시간을 보내다가, 신데렐라처럼 10시 땡치면 모두 칼같이 자러 들어갔다. 내일을 준비하는 듯 시작되는 코 고는 소리가 드르렁드르렁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나도 저울저울하다가 기분 좋게 나른하게도 잠든 어느 밤이었다.
정말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