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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Sep 25. 2024

여름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가을을 맞이해야지

여름에 덥다고 투정 부리던 아줌마 어디 가셨어요?

눈앞의 계절을 바라보고 있으면 후회하느라 과거에, 걱정하느라 미래에 가 있는 마음을 계속 현재로 데려올 수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몸과 맘이 닳을 정도로 애쓰다가도, 한 번씩 계절이 보여주는 풍경 속을 걸을 때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게 됐다.

-김신지“제철행복” 중에서

올여름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더워, 너무 더워”였다. 더위를 많이 타지 않은 체질인지라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집에 있을 땐 선풍기도 켜지 않았다. 올해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로 변했나? 이제 나이가 들어 더운 걸까? 밤에도 더위에 잠 못 이룬 날들이 수 일이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북극곰이 죽는다며 에어컨을 못 켜게 하는 소룡이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더위에 채소값은 급등하고 시금치는 정말 금값이 되어 한단에 만원을 호가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뜨거운 태양에 채소들은 녹아내렸다. 전력 소비량을 보면, 북극곰 생각에 문득 슬퍼진다. 추석이 왜 이렇게 덥냐며 야단을 떨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달고 살았다. 덥다 더워를 외쳐댔던 그때의 기억은 요즘 가을 하늘을 보고 있으면 다 잊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은 끝나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참지 못하고, 여름에게 잔소리를 하고, 저주를 퍼부은 것이 부끄러워 사죄하고 싶어 진다.


9월 22일 무렵은 추분 낮과 밤이 길이가 같아지는 가을날, 추분을 기점으로 다시 밤이 낮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 뜨거운 바다에서 만들어지던 태풍의 소식도 끊긴 9월 말. 여름내 변화무쌍했던 날씨가 차분해지고, 열 오른 이마를 짚어주는 시원한 손바닥 같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 분까지다" 같은 속담을 만들었는지도.

-김신지 <제철행복>


가을엔 산책 제철이다. 동네 산책길을 걸으면, 봄에 반겨줬던 개나리가 꽃은 지고, 잎사귀만 남아 초록빛 절정이 되어 있다.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는 허밍이 절로 나온다. 천고의 하늘, 구름모양, 색깔, 바람의 소리, 냄새, 꽃들의 변화를 살피느라 온몸이 바쁘다. 여름을 견뎌낸 나에게 주어진 선물처럼 여겨져 흠뻑 가을정취에 취해본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집안일을 마쳤다. 날씨를 보니 그저 그런날로 보내긴  아까운 마음이다. 가을을 조금 잡아둘까 싶어 커피를 내리고, 책을 들고 집 앞 벤치에 앉았다. 아직 조금은 따가운 햇살이지만 바람과 함께 섞이니 등이 따듯해 버틸 만했다. 구름의 귀여운 모양을 보고 있으니, 학교 간 소룡이가 보고 싶어 졌다. 주말아침, 가을 모기에 얼굴 스무 방 팔 스무 방 이게 과연 모기가 단체로 관광 오지 않고선 가능한 일인지 생각될 정도의 모기습격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예쁜얼굴이 프랑켄슈타인이 되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습기 덕분에 밤새 물속에서 잔 것 같다던 남편 생각도 났다. 여름인데 반바지에 긴 팔 체육복 패션을 했던 우리 동네 모든 중학생들도 (도대체 정체불명이 이 패션은 기온이 35도 올라도 변하지 않았다. 아.. 독해 독한 사춘기들) 이젠 제철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주니가 생각났다. 이제 수확을 앞두고 사과생각을 하고 계실 부모님, 애정하는친구들 얼굴도 몽실몽실 구름 위로 떠올랐다.


가을이 지나면, ‘춥네 너무 춥네’하면서 겨울을 보내겠지?시간이 흐르면, 찾아 올 줄 알면서도 봄은 언제쯤 오려나 - 움트는 꽃봉오리를 보고 세상 처음보는 꽃처럼 온 맘 다해 설레하면서  봄을 기다릴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너무 식상한 말이지만- 너무 더워 앞으로는 여름만 존재할 것 같아 두려웠던 여름은 지나갔다. 이제  가을 하늘 만큼이나 높고, 푸른 마음 활짝 열어 가을이 맞이해 본다. 내년 1월 1일까지 100여 일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올해 달성하지 못했던 계획들을 꾸역꾸역 성공해볼 작정이다. 아직 겨울이오지 않았으니까 노력해서 성공했네라며- 관절 조심하고, 펄쩍 뛰어 보고싶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전한다.

“여름아. 너무 덥다고 미워하며 내뱉던 모진 말들 다 잊어주라. 정말 미안해 “. 

내년엔 친해져 보자며 손가락이라도 걸어야겠다. 고맙게 잊지 않고 찾아와준 계절과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친절하게 따듯한 온기를 전하는 가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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