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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의 여름 끝에서

3층과 6층 사이의 우정이 30년 후 60년 후에도...

by 육백삼홈

복잡한 감정들을 곱씹으며 집에 갔다가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어린이는 다시 놀이터로 달려간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어린이가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잊고 자기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노는 그 순간이 어린이 현재를 빛나게 한다.

<김소영_어린이라는 세계>



어렸을 때 이사 풍경은 파란 용달차에서 안녕이라며 손 흔들며 꼭 편지하자, 전화하자 말하고선 주소를 잊어버리고 전화번호가 바뀌며,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놓치고 잊히면서 지냈다. 그 시절의 이별은 영원한 작별과 다름없었다.


딸아이와 잘 지내던 친구가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 크게 다툼 없이 웃음을 만들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했던 찐 친구와의 첫 이별이 열한 살 딸에게는 어떤 감정일까?

요즘 아이들은 이사나 전학을 가도 문자, SNS를 통해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덤덤한 아이의 모습이다. 어쩌면 태어나서 이사를 한 번도 안 가본 딸아이는 친구들의 전학이 많지 않은 동네여서 그런 건지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친구랑 놀고 싶을 때,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슬픔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윤과 솔은 6층과 3층에 살면서 학교도 같이 가고 놀이터도 함께 했다. 같이 소설도 쓰고, 동영상도 찍고, 캠핑도 하고, 파자마 파티도 했던 많은 추억을 나눈 사이다. 서로의 비밀도 나눴을 테고, 때로는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겠지만 서로 편안한 친구 사이였다.


이별하는 두 아이에게 키링과 사진첩을 만들어 선물했다. 행여 어떠한 이유로 서로 연락이 닿지 않더라도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 우연히 사진과 키링을 보게 되면, '아, 그 친구가 있었지' 떠올 렸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들어있다.


곧 헤어지는 두 친구는 마음이 바빠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서 놀고, 종이로 우정 팔찌를 나눠 끼고, 서로에게 마음을 나누고 있다.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듯 더욱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애틋하다. 솔이 엄마와도 잘 지내고 있어서 무척이나 아쉬운 이별이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갈 줄 알았으면, 아이스 카페라떼 좋아하는솔 엄마랑 커피 많이 마실 걸, 좀 더 다정할 걸, 또 뭘 해드릴 걸 하며 혼자 이럴걸 저럴걸 되뇐다.

나이가 들수록 만남보다 이별이 잦아짐에도 늘 이별은 낯설고 아쉽다.


뜨거운 여름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날,

윤과 솔은 겨울 방학 때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 약속이 부디 지켜지길.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안다. 처음엔 자주 연락하다가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느라 점점 연락이 뜸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별보다는 만남을 기대하는 두 아이의 마음이 예뻐 그저 응원을 보낸다.


윤과 솔의 마냥 귀엽기만 했던 몇 년의 사계절과 지금 여름 끝의 모습들...

사춘기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자라 서로의 마음을 나눌지, 아니면 멀어져 잊힐지 우리는 장담할 수 없지만, 두 소녀의 이 여름이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건대 시간이 지나 부모들에게 말 못 하는 일들로 힘겨울 때, 자주 만나지 못했더라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내 편인양 따뜻하게 안아주며 나눌 수 있는 오랜 친구가 되길 엄마는 소원해 본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또 바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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