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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같은 손이 자란 시간

여름 끝에, 너의 자람이 훌쩍 커 보이는 오늘

by 육백삼홈
< 경북, 청송 2017>

큰아이는 생선을 잘 먹는다. 가시가 있으면 뱉어낼 줄도 안다. 한데 다른 음식을 먹다가도, 이물감이 느껴져서 뱉어내야 하는 것들을 모두 '가시'라고 통칭해 부르기 시작했다. 오렌지를 먹다 씨앗이 있어 뱉을 때도 "엄마, 가시." 군고구마를 먹다가 껍질이 깨끗하게 벗겨지지 않은 걸 우물거리다 뱉을 때도 "엄마, 고구마에 가시 있어." 나는 그 가시라는 말이 귀여워서 씨라든가 껍질 같은 이름을 가르쳐주기 싫었다.

<아이라는 숲 - 이민진>



분홍색 바구니를 꼭 쥔 고사리 같은 너의 손이

아직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크게만 보이는 그 작은 손이, 오늘따라 유독 소중해 보여.


다섯 개도 안 되는 옥수수를 혼자 들려고 힘쓰는 너의 모습이

"나도 할 수 있어요" 라는 듯 어깨에 힘을 주던 그 순간들이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뭉클하네.


보지 않아도 안갖힘을 쓰고 있을 너의 표정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집중하는 모습, 무거운 걸 들 때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 그리고 해냈을 때 번지는 그 환한 미소까지 보지 않아도 다 느껴져.


서울에서 태어나 시골에 가면 늘 설레어 했던 너의 얼굴이

할머니 집 마당의 닭들을 보며 "와아" 하고 감탄하던 그때, 사과 밭을 걸으며 마냥 신나하던 너의 표정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웠던 너의 반짝이는 눈동자들.


엄마는 아직도 선한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자란 너를 보니,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이제 더 자라 혼자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때...


바구니를 꼭 잡던 고사리 같은 손이 언젠가는 세상을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손길이 되길-


어려운이 일이 있어도 너무 쉽게 주저 않지 말고 스스로 견디며 일어 설 수 있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갖힘을 쓰고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길 -


새로운 세상을 볼때 언제나 여전히 설레이길-


엄마는 그 시간동안 세상이 너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걱정도 되지만, 너의 그 맑은 마음이 오래오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단다. 부디, 조금만 천천히 오래오래 — 순수함이 지켜졌으면...


여름 끝 문득 훌쩍 자란 딸을 보며-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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