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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수많은 사진들, 그리고 잊힌 순간들

by 육백삼홈
< 퓌센, 알프제(Alpsee) 호수, 2005>

사진을 찍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드물다. 보통 예쁜 꽃이나 풍경, 필요에 의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내가 찍히기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찍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뒷모습'을 담은 사진을 발견했다. 너무 멋진 풍경이 휴대폰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 번 반복해 찍고 있는 순간이었다. 사진으로 남겨두고 오래 보고 싶었던 풍경만큼이나 나의 뒷모습도 오래 기억될 듯한 사진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한 사진의 처음은 필름을 사용한 카메라였다. 필름 카메라의 추억은 많았다. 필름을 잘못 껴서 인화했는데 사진이 없어 당황했던 그날의 추억들, 주인공들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찍히기도 하고, 눈은 왜 그리 자주 감았는지 눈 감은 사진이 많았다. 요즘처럼 셀카 형식보다는 배경 위주의 사진이 대부분이었던,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필름 카메라.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가 대중들의 관심이 많아졌던 때, 사진 인화를 하지 않아도 작은 화면 속에서 사진을 찍고, 지우고 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집에 한두 개쯤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일명 '디카'의 시대가 화려하게 열렸고,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 이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까지 없어지고 핸드폰 속 카메라로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서로 나누는 사진으로 우리의 일상은 변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정작 다시 꺼내보는 사진은 몇 장이나 될까? 자주 보는 사진 말고는 대부분 휴대폰을 바꿀 때나, 갤러리를 우연히 넘길 때쯤 다시 보게 된다. 제대로 사진첩 정리도 하지 않고 몇천 장이 저장되어 있어, 어쩌면 어떤 상황에서 왜 이 사진을 찍었는지조차 모를 존재감 없는 사진들도 많다.


어느 날, 문득 스마트폰 갤러리를 끝까지 내려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카메라 사진첩 맨 아래 묵혀 있던 그날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다시 꺼내본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한 한 컷들, 설레었던 여행지에서의 풍경들,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간들이 차례로 화면에 떠올랐다.

한 장씩 넘겨보니 그때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서의 마음과 찰나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 글을 써보려고 한다. 카메라 렌즈가 담지 못한 그날의 온도와 향기,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던 간절함까지도 함께 되살려 보려고 한다.

나의 사진은 단순히 시각적 기록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브런치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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