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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미 와있는데 자꾸만 가을비가 배송된다.

가을 하늘 공허한데 높고 구름 없이~

by 육백삼홈


<서울, 북한산로, 2025>

과연 10월은 등고하고 국화주 마시는 계절이구나.

조상들이 손가락을 짚어 지정해 준 제철 숙제가 있으니 고민할 것도 없이 반갑다. 명절로서 중양절의 전통이야 희미 해졌지만, 국화는 때마다 피고 단풍은 올해도 물들 것이다. 국화로 전을 부치고 떡을 해 먹던 정성을 따라 하진 못해도 등고하고 내려와 국화주를 마시는 건 할 수 있겠지.

눈밭을 걸을 때처럼 옛사람들이 먼저 지나간 발자국에 내 발을 포개려면, 아무래도 세월이 깊은 곳에 가는 게 좋겠다. 기둥 하나 돌 하나에도 오랜 역사가 담겨 있는 곳. 그럴 때 고궁이나 성곽 길만큼 좋은 산책로도 없다. 오랜 세월 함께 나이 들어온 나무와 건축물이 어깨를 기대듯 어우러져 있는 곳이니까.


-제철행복_김신지.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지고, 한 계절이 흐르고...

나이 들면 휴대폰 사진첩 사진 대부분이 꽃이라던데 어느 순간부터 내 휴대폰에도 아이들보다 꽃, 나무, 계절이 담긴 사진이 더 많이 담겨있다.

계절다움을 느끼기보다 춥네- 덥네- 간결한 느낌으로 보냈던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시절과 달리, 미세하지만 계절마다 다른 바람을 감각적으로 느끼며 봄이 오려나, 가을이 오고 있구나- 하며 바람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우리나라 사계절이 뚜렷한 게 뭐 그리 내세울만한 자랑거리인가?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매년 가을이 짧아짐이 그저 아쉽다.

계절에 맞는 음식을 해 먹고, 옷을 꺼내 입고, 절기와 계절이 딱딱 들어맞는 걸 보며 그저 신기해 만나는 사람들 마다 계절이야기를 나눈다.


유난히 무더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이미 가을은 온 듯한데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렵다. 가을비가 너무 많이 자주 내리고, 파란 하늘보다는 우중충한 먹구름으로 애국가에 나올 정도로 높고 구름 없는 가을 하늘을 만나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자주 걷고, 뛰는 요즘, 하늘 볼일이 많은데 남편과 주말 산책을 하면서 맑은 가을 하늘을 보기 어렵다며 서로 아쉬움을 나눴다. 남편과도 경제, 정치 이야기 보다 계절이나 날씨, 절기 이야기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우리도 변하는구나 한다.

남편과 보내는 16번째 가을, 10월의 어느 멋진 날 결혼한 우리에게 가을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남편과 함께 매년 찾아오지만 늘 다른 삶을 살아내는 사계절이 기대되고, 아직 설레는 걸 보면, 조금씩 노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는 몸보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연일 내리는 비에 몸이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특히 주말마다 내리는 비에 가을 소풍생각이 간절하다. 우중충하고 어두운 날씨가 사람에게 전해지는 우울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이런 거구나 자주 체감하는 요즘이다.


짧은 가을이지만, 높고 맑은 우리나라의 예쁜 가을을 자주 만날 수 있길-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맑은 하늘 한번 쳐다보는 일로 마냥 행복하길 바라보는 지금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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