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문헌정보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랑가나단의 도서관학의 5법칙을 인용해 도서관과 관련한 모든 요소의 관계성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이 책은 도서관과 관련한 각 요소의 적극적인 상호작용과 철저히 재구조화된 큐레이토리얼의 중요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는데, 그 방식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페이지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왼쪽 페이지에는 앤드루 노먼 윌슨의 <스캔 옵스> 작품을 전시하거나, 관련자의 인터뷰를 싣고, 오픈 액세스 플랫폼을 지지하는 편지까지도 실어져 있다. 한편 대부분의 오른쪽 페이지에는 본문이 쓰여있으며, 양쪽 페이지를 할애하여 <리딩 룸 리딩 머신>이라는 한 편의 비주얼 에세이가 큐레이팅되어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상상의 도서관>을 응축해 놓은 한 편의 전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북 큐레이션>이라는 명목으로 몇 가지의 책을 전시하는 수준의 큐레이팅 정도를 접해본 나에게 책이 ‘대량 생산된 복제품’으로써 가치를 발현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퍼포밍’되는 것이라는 개념이...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책은 책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었나?’라고, 쉬이 생각하기에는 도서관에는 단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이 있음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사서는 큐레이토리얼 에이전트로서 책마다 페이지 매겨진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큐레이팅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책을 실용적인 경험에 녹여냄으로써 또 다른 아상블라주를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다녀온 대만의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떠오르게 했는데, 단순히 전시를 목적으로 한 단일적 성격의 공간이 아닌 복합 문화공간으로써 예술작품전시관, 도서관, 서점, 정원, 더 나아가 굿즈샵과 레스토랑까지도 공간 일부로 작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지하에 있는 도서관은 ‘예술’ ‘전문’ ‘도서관’이라는 단어 중 어느 하나 치우치는 곳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기본적으로 십진 분류를 활용하였기에 완벽하게 재구조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도서관의 역사를 아카이빙 해놓은 자료들과 지정된 주제로 이어지는 전시, 픽토그램을 활용한 서가 안내가 하나의 흥미진진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다면 학교 도서관에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가 자연스레 머리에 떠올랐다. 사서교사가 혼자 백날 서가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책을 여기에 꽂았다가 저기에 꽂았다가 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데다 “선생님 이 책 좀 찾아주세요.” 하면 책 찾는 기계처럼 책을 찾아오는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 도서관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퍼포밍 해야 한단 말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고민이 깊어지다가 결국 생각해 낸 방법은, ‘모두에게 모두의 도서관을 퍼포밍 하게 하자’. 였다. 모든 사람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지만 각기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학생들은 다 같은 ‘학업’이라는 틀에 갇혀있어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하게도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취미를 갖고 있으며, 다른 진로를 희망한다. 일방적으로 제시된 보기에서 선택하기에는 이처럼 모두가 다른 필요를 띠기에, 삶을 탐색하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감안하고서도 자신의 도서관을 구축해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내가 물리적으로 개인에게 도서관을 한 평씩 나눠주지는 못하겠지만 종이 한 장만으로도 무궁무진하게 큰 도서관을 구축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어 저마다 자신만의 도서관을 갖게 할 수 있는 사서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