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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성새진 Feb 05. 2025


        오랜만에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향수>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던 시절, 나는 중학생이었다. 마침 그 당시 내 취미가 매주 주말마다 종로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서 책을 한 권씩 사는 것이어서,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을 사게 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책이 너무 재미있어 밤을 새우는 경험을 했다. 충격적일 정도로 재밌었던 이 책을 통해, 책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정말 재밌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정말 의미 있는 책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책은 냄새가 없이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라는 악랄한 후각의 천재가 주인공이다. 그는 향기가 아름다운 여인들을 살해하고, 그 여인들의 향기들을 모아 향수를 만든다. 그루누이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통해 신적인 존재가 되며 모두를 홀린다. 그러나 정작 그루누이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본질을 가질 수 없는 존재, 연출될 뿐인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은 사랑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존재임을 느끼며 집시들에게 먹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재의 참신함과 18세기 프랑스에 대한 묘사, 인외적인 존재에 대한 흥미,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느낌 등이 아주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도 앞서 말한 모든 내용들이 다 흥미롭지만, 그루누이와 여러 인물들을 통해 탐욕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그루누이는 냄새를 가지지 못하고 태어났기 때문에 향기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향기를 가지기 위한 방식으로 살해를 선택하지만, 그루누이는 자신의 본성인 증오심과 적개심을 선택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살해는 역설적으로 본성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루누이가 거쳐간 사람들, 친모, 신부, 가죽장인, 향수장인(발디니), 로르의 아버지인 리시까지도 사랑으로 대표되곤 하는 선에 가까운 주요 가치들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그 안에 탐욕을 숨기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쉽게 말하면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다. 친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살해하는 영아 살인마지만 자신은 수공업자의 정부인이 되어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고, 신부는 그루누이를 버리고서도 떳떳한 종교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가죽장인은 아이들의 노동력을 말도 안 되게 착취하면서도 그들을 거둬두는 것처럼 행세하고, 발디니 역시 모든 향수가 그루누이의 창조물임에도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며 부와 명예를 얻는다. 또한 자신의 아름다운 딸 로르를 지키기 위한 부성애의 화신처럼 보이는 리시도 사실은 로르를 소유해야 할 아름다움, 명예의 상징 정도로 생각하고 지키려 한다. 


        그루누이는 이런 인간들의 가식과 위선을 느끼며 본성과 행위가 일치하는 자신이 더 초월적인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면서 만들게 되는 것이 향수다. 자신의 모든 소유욕과 탐욕, 증오가 섞인 결과물인 향수를 통해, 어차피 자신은 냄새가 없기 때문에 인간에 동화될 수 없으므로 자신을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로 격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향수는 공교롭게도(?) 너무나 좋은 향을 띠고 있었으므로, 향수를 뿌린 그루누이 역시 자신이 증오하던 인간들, 아주 위선적인 인간들과 같이 자신의 악한 본성은 숨겨지고 아주 아름다운 향기의 화신 가면을 쓰게 되어버린다. 여기서 그루누이는 인간에 느꼈던 그 역겨운 간극을 자신에게서 느끼고 패배하게 된다.


        이 패배 이후, 그루누이가 선택한 파멸의 방법은 집시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인데, 작가는 여기서 인간의 그릇된 소유욕의 분출을 아주 적확하게 보여준다. 그루누이는 자신이 만든 최고로 좋은 향수를 집시들 앞에서 뿌리고, 집시들은 그루누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를 가져버리고 싶어서 그루누이를 모두 먹어치워 버린다. 그들은 식인이라는 행위를 해놓고서도 되려 당당한 모습인데, 자신들의 행위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인간이 내세우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오롯이 선에만 가까운 것인가, 자신의 욕망을 감출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일 뿐이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는 문장이 좋게만 들리던 시절은 멀어졌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탐욕의 포장지로써만 이용되지 않도록 함께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읽으니 책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더 다각화해서 볼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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