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 것은 처음이다. 이 눈물은 어떠한 감정적인 동요도 관여하지 않은 커다란 경탄의 표현이었다.
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을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 그려진 샤갈의 천장화를 통해 처음 실재적으로 경험했다. 나는 정점에 다다른 아름다움이 인간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문득 생각해보니 개개인에게 와닿는 아름다움의 정점이 서로 다르다는 건 인류에게 큰 축복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곳에 아름다움과 경외를 느낀다면 인류는 단 하나의 아름다움만을 향유하느라 다른 어떤 발견과 발생, 발전을 좇지 않을 테니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때 느꼈던 그 관념적 아름다움의 실재를 다시금 경험했다. 샤갈의 천장화는 색을 통해 아름다움을 전달했다면, 이 책은 모든 문장과 단어, 호흡으로 나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p.7)
그 꿈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가.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가. 이어서 독일어로 생명, 생명이라고 흘려썼다가 굵게 가로로 선을 그어 지운 흔적이 보였다. (p.27)
아침이면 그날 강독할 문장들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암기하고, 세면대 위의 거울 속에 어렴풋하게 비쳐 있는 내 얼굴을 곰곰이 바라보고, 마음이 내킬 때마다 환한 골목과 거리를 한가롭게 걷습니다. 문득 눈이 시어 눈물이 흐를 때가 있는데, 단순히 생리적이었던 눈물이 어째서인지 멈추지 않을 때면 조용히 차도를 등지고 서서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p.41)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 사이를 둔다. 어두운 곳에서 글을 쓸 때, 윗 문장에서 아랫 문장을 겹쳐 쓰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넓게 간격을 두는 것처럼. (p.148)
시간이 더 흐르면…… 그의 목소리가 더 잦아든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꿈에서 뿐이겠지요. (p.158)
말을 잃은 여자와, 시각을 잃어가는 남자의 처연한 구원이, 어디 가닿을지 모를 절제된 상승이, 읽다 보면 모든 낱개의 활자들 아래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그들에게 거대하고 막막한 삶의 증명은, 거대한 아름다움 앞에서 놀랍도록 사소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죽은 언어와 차가운 어둠, 뜨거운 침묵으로 단절되지 않은 슬픔의 연결은 서로에게 얼마나 결연한 보탬이 되는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음과 모음으로, 음절과 어절로, 문장과 문단으로, 그 사이의 빈 공간과 가득 찬 공간으로, 이 책은 스스로 절대 외치거나 뽐내지 않으며, 단지 존재함으로써 무고(無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