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혼자아무말방콕여행대잔치 1

여행기인데여행기는아닌그렇지만여행기가맞긴한아무튼방콕에있는나의얘기

by 성새진 Feb 10. 2025


2025.2.9. 1일 차


혼자 방콕에 왔다. 10년 전쯤 전에 가족들을 이끌고 왔었는데 그때 방콕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꼭 다시 한번 방콕에 오겠다고 다짐했는데, 진짜 왔다. 이번엔 혼자 왔다. 원래 여행을 즐기고, 또 혼자를 즐기고,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을 즐겨해 왔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 제한이 생기고 개인적인 상황들도 변하다 보니 통 혼자 하는 여행이 어려웠는데 사주에 잠재된 역마살이 다시 발현했는지 안 가고는 못 배기겠어서 큰 맘을 먹고 항공권을 질렀다. 원래는 마르세유에 가고 싶었는데 블로그를 찾아보니 갱단이 어쩌고, 총기사고가 어쩌고 하길래 무서워서 안전한 곳으로 다시 골랐다. 솔직히 딱 마르세유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고 유럽을 가고 싶었는데 마르세유가 제일 싸길래 혹했던 거라 포기하기 쉬웠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방콕에 여행 온 적이 이미 있었는데, 그때 이 도시가 생각보다 아주 안전하고, 친절하다고 느꼈어서 바로 대체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 아주 어린 사촌동생과 함께 방문했었는데... 할 말은 많지만 여행 가이드의 직업 난이도가 아주 높은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정도로 줄이겠다. 아무튼 그때 이 좋은 도시를 꼭 한 번 혼자 다시 오겠다고 생각했고 그걸 이루는데 10년이 걸렸다. 다시 온 방콕은, 여전히 좋다.


방콕에 오기 바로 전 날에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칼바람과 함께 눈이 펑펑 왔다. 질퍽이고 미끄러운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몸에 힘을 바짝 주고 걸어도 크고 작게 삐끗 미끄러졌다. 안 그래도 주차난인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지하 주차장은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도 꾸역꾸역 대놓은 차들 때문에 들어가기도, 나가기도 어려운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이 되었다. 그마저도 비집고 들어가서 어떻게든 지하에 대보려다 실패한 내 차는 지상주차장에서 10센티가 넘는 적설량으로 인해 천연이글루에 갇혔다. 나는 날씨를 아주 많이 타는 사람이고, 방콕은 현재 25도에 습도 0이다. 10년 전에 산 무거운 롱패딩을 짊어지던 어깨는 가벼운 여름옷으로 한결 가뿐해졌다. 얼음판과 진흙을 피해 가겠다고 진창인 길만 보며 걸었던 고개가 드디어 파란 하늘과 푸릇한 나무를 보겠다고 위를 향했다. 나 역시 관광객이기에 내가 가는 곳들도 모두 관광객들이 북적이지만, 누구도 조급해 보이지 않아 덩달아 여유로워진다. 사실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나는 딱히 일정이 없다.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은 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여행 계획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특히나 여러 번 방문한 여행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 웬만한 방콕 랜드마크를 다 찍었다. 두 번 가고 싶은 곳도 딱히 없다. 그래서 간다 해도 동일한 시야로 보고 싶지 않으니 멀리서 보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때는 왓 아룬에 직접 방문하기였다면 이번엔 왓 아룬이 보이는 강 건너에서 식사하기, 뭐 이런 거. 이럴 때 나도 많이 여유로워졌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20살에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창 대학생들에게 내일로가 필수 아니면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나는 계획을 전부 짜고 그 계획표를 보여주며 함께 여행을 갈 친구들을 구했는데, 가겠다고 나섰던 친구들도 내 계획표를 보고 나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계획표는 하루에 지역별 유명 관광지 2군데 이상을 찍는 강행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면 보성 녹차밭 찍고, 벌교 꼬막 먹고, 순천만을 가는 미친 일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오로지 기차와 버스로만. 돈 아낀다고 택시도 안 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같아도 같이 못 가겠다 싶다. 결국 나는 같이 가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갔다.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고 계획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던, 엑셀로 계획표를 분단위로 짜던 20살의 나. 


근데 나는 막상 가보니 그런 여행 스타일이 참 잘 맞았다. 당연하다. 내가 짠 계획이니까. 그 여행을 하면서 혼자니까 이렇게 다닐 수 있지, 친구나 연인과 함께라면 내 맘대로 다니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그 이후로 거의 모든 여행을 이렇게 혼자 다녔다. 네댓 번은 더 간 내일로, 한 달 동안 6개국을 돈 유럽 여행, 퇴근 후 출국하고 입국하자마자 출근하는 일정의 홍콩 등... 말하자면 극강의 효율충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때 가보고 싶던 국내외 관광지 곳곳을 웬만큼 다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내가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한번 여행을 가면 무조건 뽕을 뽑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번 싹 돌고 나니 내 취향을 알게 됐고, 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시 갈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나는 그걸 알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아무튼 잘 된 일이다. 그 덕에 이렇게 방콕을 다시 올 수 있었으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일이라는 시간을 방콕에서 보내게 됐다. 나만의 시간을 더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아무튼 금주.... 대신 방콕 여행기를 올립니다....

방콕 여행기... 라기엔 사실 제목대로 아무 말대잔치입니다....

모닝페이지처럼 쓴 글이라....

대충 봐주세요(?)

다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당...!

                    

작가의 이전글 [서평]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박완서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