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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렌지와 빵칼-청예

by 성새진


통쾌함과 후련함. 쏟아지는 도파민 뒤에 느껴지는 죄책감. 끝끝내 참수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셨던 괴물 같은 비정함. 자각 후에 오는 참담함.




비도덕과 저열함을 마음 한켠에 가지고 살면서 온전히 통제한다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 인간일 수 있나. 저열함과 저급함이 나도 모르게 방심하는 사이 새어 나온다거나,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끄집어 나온다거나, 어떠한 악의 목적으로 앞세워질 때 이 순수한 악은 타인의 것일 수 없음에도 나는 도덕적인 인간인가?


나는 소수와 약자를 사랑한다. 그들의 사연에 눈물 흘리고, 그들을 위해 기부하고, 그들을 위해 국민청원을 하고, 그들을 위해 기사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답지 않은 것들에 분노하고, 짐승만도 못한 놈들을 증오하고, 찢어 죽여도 모자를 놈을 왜 살려두냐며 날뛴다. 그럼에도 나는 도덕적인 인간인가?


나는 나를 안다. 나의 상황을 알고 나의 성격을 알고 나의 진위를 안다. 나의 잣대는 고결하다. 평등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역사의 인물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완전함에는 그 어디 무너져 내릴 함의조차 없다. 게다가 나는 원래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나의 비위에는 언제나 마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는 타인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타인의 진위를 알지 못한다. 타인의 돌다리가 비브라늄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두들기고 건너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면서 나는 타인의 비위는 결국 그 사람의 전부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인상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운운하면서. 처음부터 쎄했다면서. 그 자식은 그럴 관상이라면서.




한편 나는 동물을 사랑하고 비건 관련 책을 읽었으면서 동물 복지 계란이 비싸서 웬만큼 할인이 없으면 구매하지 않고


한편 나는 자본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수입을 올릴까에 대해 생각하고


한편 나는 가부장제를 규탄하고 여성인권을 부르짖으면서 그 전통적 관습에 맞추어 살고 있다.


나는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도덕을 나의 현실에 이양하고서는 타인을 규범과 규제에 따라 고고히 판결한다. 나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나조차 완전무결한 도덕의 신이 아님에도, 나를 심판자의 자리에 앉히는 것일까. 나의 형은 언제나 집행유예고, 타인은 사형일 텐데도.




직선적인 이야기가 주는 직선적인 감정들이 나를 어디로도 비껴가지 않은 채 꽂힌다.


나는 과연 도덕적인 인간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도덕적인 인간 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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