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건 2015년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글을 어떻게 쓰는 거지? 이 사람 천재다.'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 그를 좋아하는 작가 반열에 올려두었다.
그러다 <보다>, <말하다>, <읽다> 시리즈를 차례로 탐독하고 나선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 글도 잘 쓰는구나'했다. <오직 두 사람>을 보고 잠시 실망했지만(엥스러울 정도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알쓸신잡에 나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볼 때, 논리적이면서도 지적인 모습에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 온 대답>에서 여행가 김영하의 면모까지 보게 되니, 나는 어느새 '인간' 김영하를 좋아하고 있었지 '작가' 김영하에 대해서는 물음표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돌아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내가 처음 봤던 <살인자의 기억법>의 작가로서의 김영하가 돌아왔다. 흡인력 있는 소재와 빠른 전개,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조금은 버석하지만 차갑지 않은 문체까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걸 때려 넣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이게 김영하지.' 싶은 생각으로 후루룩 읽다 보니 300페이지 정도 되는 장편임에도 빠른 시간에 읽어버렸다. 김영하 작가가 SF를 선택한 것부터 놀라웠는데 그 안에서 철학을 녹여낸 것을 읽다 보니... 읽는 동안 행복할 정도로 즐거웠다.(내용 자체는 즐겁지 않지만...)
불교철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잖은 관심이 있고, 인생을 고통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반야심경의 소설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마, 억겁, 고통 등 불교 관련 용어들이 등장하는 것과 선이(참선), 민이(연민) 등을 떠올릴 수 있음이 그를 뒷받침했다. 고도로 극대화되고 발전된 인공지능의 존재를 통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음으로써 있으면서도 없다는 空을 말하고, 苦의 범주의 살아있는 모든 것(심지어 그게 휴머노이드일지라도)을 포함하여 진정한 生에 대해 말하는... 이 작품이 너무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진정 살아있다는 건 무엇일까? 결국 나는 무엇이고, 인생은 어떻게 주어지며 태어난 존재들은 어째서 고통받아야 할까? 그렇다면 그 존재는 왜 생겨나는 걸까? 고통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이 오로지 죽음뿐일까?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떨까? 죽음 이후의 세계는 소멸일 것인가 아니면 재생일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유한 또는 무한 이어짐일 것인가.
내 머릿속엔 수많은 질문이 채워지고, 나는 그 답으로 다시 반야심경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