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으로 넘어온 2021년 1월 첫 주에, 내 명의로 된 5억짜리 첫 번째 집을 계약했다. 펜트하우스다. 건물 꼭대기 층에 위치해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내 생애 최초이자 최대의 지출을 이곳 펜트하우스에 쏟았다. 집을 사겠다는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과 걱정을 거쳤다. 결정을 내린 후에도 내 마음속 잔잔한 물결은 일순간 파도로 굽이치듯 요란하기도 했다. 내 집을 마련했다는 게 기쁘면서도 많은 생각들이 부딪혔다. 이 결정에 담긴 의미와 무게로 인해 삶의 여러 부분들이 달라지겠구나 싶었다. 옳은 선택인지 100%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명의로 된 등기부등본을 받아 들고서야 나 자신에게 괜찮을 거라고 다독였다.
집을 사겠다는, 인생에서 꽤나 큰 의사결정은 불현듯 찾아왔다. 불과 계약서를 쓰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내가 곧 집을 사게 될 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이렇게 쉽고 빠르게 진행돼도 싶을까 정도였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작년 말 지인 커플을 초대해 홈파티를 벌였다. 다이닝룸에 둘러앉아 준비한 음식, 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둘은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집을 훑어보았다. 조명들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빈 술병, 음식의 온기가 사라진 접시들이 엉켜있는 싱크대. 언제까지 이곳에서 이 당연한 것들을 누릴 수 있을까? 계약갱신청구권을 쓴다면 앞으로 3년. 그 이후엔 또다시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우겠지. 착잡함이 밀려왔다. 최대 3년까지 거주안정이 약정된 전셋집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파티는 끝났고 현실은 냉랭했다.
"우리, 집을 사자."
아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대화가 행동으로 옮겨진 건 일주일이 채 안된 주말이었다. 새해를 맞아 친정댁에 다녀오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사전 조사한 아파트가 있는 동네의 부동산에 연락을 넣었다. 일요일임에도 부동산 문은 대부분 열려있었다. 중개사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처음 들른 곳은 마트와 초등학교가 인접한 20평대 아파트였다.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라 깔끔했고 둘이서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다만 이곳에서 우리 부부의 출퇴근이 쉽지 않다는 게 큰 걸림돌이었다. 같은 아파트의 다른 매물 몇 군데를 더 둘러본 뒤 부동산에서 나왔다. 하늘은 맑았지만 1월의 한기는 매서웠다.
차 안으로 들어와 알아봐 둔 다른 아파트 쪽 부동산에 연락하고서 시동을 걸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중개사 사장님은 따뜻한 차를 내주셨다. 몸을 녹이고서 다시 매물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지은 지 10년 정도 된 30평대의 대단지 아파트였다. 평수 대비 괜찮은 가격대, 편리한 교통여건, 학교 및 생활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은 직접 보기 전까진 모른다는 게 실감이 갔다. 다만 매물들의 층수, 타입이 조금 아쉬워 딱 이거다 라는 물건은 없었다.
부동산에 돌아와 중개사 사장님과 이야기를 더 나눴다. 융통할 수 있는 현금과 대출을 그러모으면 5억 정도까지가 마지노선이다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듣던 사장님은 대뜸 자기와 함께 다른 동네를 가보자 하셨다. 사장님께서 갖고 계신 주거용 오피스텔을 구경시켜 주신다고, 신혼부부인 우리에게 그 정도 예산이면 여기가 더 나을 거 같다 하시면서. 사장님 차를 얻어 타고 20여 분 걸려 도착한 동네는 우리 부부가 오고 싶었으나 대출 제한 등으로 여력이 안돼 반쯤 포기했던 곳이었다. 차를 타고 동네에 들어서는데 마치 성문에 걸려있던 빗장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년 10월에 준공한 새 오피스텔이었다. 건물용도는 오피스텔이지만, 방 3개, 화장실 2개의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로 나오는 소위 '아파텔'이었다. 직접 안을 둘러보니 아파트와 별다를 게 없었다. 사장님은 자기가 이곳을 중개하러 온 게 아니라 하셨다. 알아볼 생각이 있으면 다른 중개사분을 소개시켜 주신다 하셔 일말의 고민없이 연락처를 받아들었다. 직접 차를 몰고 시간을 내 집을 보여주신 사장님께 거듭 감사하다 말씀드렸다. 집으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이곳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거창하게 SWOT 분석까지 거친 뒤 매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소개받은 중개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중개사 사장님은 곧장 필터링된 매물 리스트를 보내주셨고 우리 부부는 다시 한번 그 리스트에서 볼 곳들의 우선순위를 매겼다. 이튿날 평일 하루 휴가를 낸 뒤, 매물을 보러 나섰다.
5순위까지 매긴 집 중 이미 계약이 체결된 1순위 집을 제외하고 남은 매물을 둘러봤다. 그중 2순위 매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48층 탑층에 위치한 20평대의 집. 거실은 남동향, 남서향 양창형 구조인데 창을 통해 보이는 전망이 탁 트여 눈이 시원했다. 탑층에 이 정도 경치면 펜트하우스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중개사 사장님과 부동산에 돌아와 계약하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가계약금을 매도인에게 이체한 후 중개사 사장님께 앞으로 치러야 할 일정을 안내받았다.
얼마 후 계약서를 쓰고 잔금까지 무사히 치른 뒤 키를 수령하고 집으로 올라가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새 집에서 미래를 그렸다. 가족의 수는 늘어날 테고, 우리 부부의 모습도 그에 맞춰 변해갈 것이다. 삶의 궤적이 이곳에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좋은 일들로 가득할 집이길 바랬다. 매달 청구될 원리금은 그에 대한 비용일 것이다. 짊어질 게 많아졌지만 그만큼 마음은 내려놓고 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집을 살펴보고 나오면서 거실 창을 바라보았다. 맑은 겨울 햇빛이 한가득 거실로 뿜어져 들어왔다. 내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환해졌다. 스무살부터 시작된 지난한 나의 이사 연대기는 30대, 영끌족이 되서야 잠시 쉼표를 찍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