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인데 인테리어 꼭 해야 하나.

안 했으면 후회할뻔했다.

by 이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주방 인테리어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아내와 나는 의견이 갈렸다. 아내는 살림하기 싫은 주방이라 무조건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는 입장. 나는 완전 새집이고 비용도 꽤 들어가니 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의견 차이가 워낙 극명했다. 무조건 해야 한다.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 주방 인테리어로 논쟁을 치르기 전까지는 나는 우리 부부가 N극과 S극으로 맞닿은 찰떡궁합인 줄 알았다. 허상이었다. 이런 부분에선 우리는 다른 색으로만 칠해진 자석의 같은 극이었다. 서로를 밀어내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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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전 주방 모습

아내와 내 주장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다.


아내

- 현관에 들어서면 ㄷ자 주방이 바로 보이는 구조다. 상부장이 빽빽해서 시야가 답답하다.

- 대리석 상판 높이, 하부장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 살림살이할 맛이 안 나게 생긴 주방이다.

- 전세도 아니고 우리 집인데 우리 스타일로 꾸미자.


남편(나)

- 현관에 들어서서 주방을 안 쳐다보면 된다.

- 상판 높이, 하부장 색깔 썩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최면 걸면 괜찮아진다.

- 주방 살림 자주 안 하면 된다.

- 우리 집이지만 대출을 많이 끌었으니 실질적으로 은행 소유다.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건 아끼자.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주장을 펼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이전에 살던 전셋집에서도 아내는 주방에 무척 신경 썼던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 못해도 천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 게 부담스러웠다.


평행선을 달리던 우리의 논쟁은 결국 아내의 승리로 귀결됐다.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 했던가. 날 나고 길러준 엄마로부터 얻어온 입증된 사례에 의거하면 대체로 여자 말을 들었을 때 좋은 결과가 펼쳐졌다. 엄마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아빠가 곤경에 처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빠를 반면교사 삼아 나의 결혼생활에선 여자 말을 듣지 않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세상 쿨한 척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주방 인테리어가 결정된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테리어 업체 선정부터 견적, 설계, 시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아내는 총괄했다.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과 연애시절 나보다 더 자주 연락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3년 가까이 알고 지내며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은 거의 처음 봤다.


인테리어 시공은 약 3주에 걸쳐 진행됐다. 중간중간 업체에서 카톡으로 보내준 변화된 주방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위대함을. 주방의 환골탈태 과정을 직접 목도하니 경탄스러웠다. 답답하게 들어섰던 상부장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는 수입 타일과 아내의 주문대로 짜인 원목장이 들어섰고, 하부장과 상판 대리석도 말끔하게 변신했다. 상부장이 없어져서 수납공간이 부족할 것 같았는데 하부장 높이가 길어지고 아내의 구상대로 파티션이 이뤄지며 별 문제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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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시공 중 사진


100%까진 아니지만 무척 만족스러운 리모델링을 한 지 8달이 지난 지금. 아내는 자신의 취향이 듬뿍 담긴 주방에서 주방 살림을 (자주) 하고 있다. 새집인데 왜 인테리어를 하냐고 반문했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나도 주방을 좋아한다. 인테리어에 들어간 비용을 투자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잘 꾸며진 주방 덕분에 오늘의 집 온라인 집들이에도 우리 집이 소개됐다.

주방.jpg 아내의 취향이 담긴 지금의 주방


인테리어를 하고 난 뒤 다시 한번 깨우쳤다.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는 건 역사 속에서 수없이 입증된 사실임을. 아내와 주방과 우리 집을 더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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