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적 꿈은 유아교육 학도는 아녔다.
그림 그리는 걸 엄청 좋아했다.
유치원 때는 음감이 좋다는 선생님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콩쿠르도 나갔지만 나는 오케스트라를 좋아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나의 MBTI도
사람들 만남에서 에너지를 얻는 E와
감성을 쏟아내는 F였으리라.
오케스트라 파트장을 맡기도 했다.
그 시절 악장 언니 오빠들은 한 명씩 유학을 갔다.
유학 준비라니...
나는 해외로 가는 유학보다는
무조건 서울에 있는 학교에 입학해서
상경하는 꿈이 있었다.
그렇게 음악의 길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땐 미술 동아리를 들어갔다.
미술선생님이 나에게 그러셨다.
"너는 공부 잘하는 애가 미술을 왜 해?"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건지
나를 반기지 않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나를 반기는 영어신문 동아리에 들어가서 동아리장을 맡았다.
그렇게 미술의 길도 나의 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이들을 위한 동요를 만들고 육아 만화 에세이를 집필한 작가가 되었다.
그림과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유치원 교사 시절
버거운 하루 끝에는 누워서
주말 동안 그림 그릴 것들을 찾았다.
주로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을 그리는 과정이 참 재밌다.
누군가는 나에게 사람을 왜 그리냐 했다.
그리고 나면 똑같지 않을 때
더욱 스트레스를 받지 않냐고...
꽃이나 동물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래야 형태가 틀어져도 아무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주말이 되면
그림을 그렸다.
사람 그림은 조금이라도 비율이 맞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이상하지만
잘 맞은 날의 성취감과 희열은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벅차다.
연습을 통해 더 맞아 들어가고 성장하는
내 그림이 뿌듯했다.
꽃이나 동물을 그렸다면 그런 느낌이
나에게 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SNS에 올리면 몇몇의 스타들이 직접 내 그림을 보고 좋아요 하트를 누르고 가기도 하였다.
이 즘에는 사람을 보면
눈 사이와 코의 비율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비율을
빠르게 읽어내는 습관이 생겼다.
정밀하게 그리던 사람들은
이제 점점 간단해졌다.
특색을 살린 캐리커쳐가 되기도 하고
내 스타일의 일러스트로 재탄생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의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다.
남편과의 연애 이야기를 시작으로
임신 출산 육아의 이야기까지
나의 만화는 탄생한 것이다.
만화뿐만 아니라
유아를 위한 연구물의 일러스트 작업을 맡고
경기도교육청 동물보호교육의 삽화 작업을
내 이름을 올려 맡게 되었다.
어릴 적 꿈을 이루는 방법은
이렇게 가지가지다.
그러니 꿈은 아무튼 꿔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