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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상은 Jul 20. 2020

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나를 깨우는 말들

 


 3월부터 시작된 야구 시즌은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었다. 그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뜨거웠다. 그 당시 나는 전 경기 리포팅을 맡고 있었는데 더위로 유명한 도시, 대구 출장이 많았다. 주위 사람들은 대구는 시멘트에 달걀을 던지면 그대로 달걀프라이가 된다고, 숨을 못 쉬도록 습하고 답답하다고 겁을 주었다.

  ‘에이.. 더우면 얼마나 덥겠어.’ 추위보다 더위를 더 좋아하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 말들을 넘겼다.

 그런데 대구 시민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그 말이 사치였음을 깨달았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야구장은 마치 습식 사우나 같았다.

대구구장 더위에 충격받은 나

 더운 것도 힘든데 심지어 지칠 대로 지친 터라 ‘아나운서 한 명 더 안 뽑으려나? 혼자 시즌 마치긴 힘들 것 같은데..’ 같은 연약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충분히 할 시간조차 없던 때였다. 바로 그라운드로 내려가서 취재를 하는데 맨날 출장 오는 내가 안타까워 보이셨는지 한 감독님께서

  “연아나, 안 힘드나?”

  “힘들어요. 매일 나오니까 몸도 지치고요.” 라며 우는소리를 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이 “힘들어도 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돼. 그럼 바로 빼앗기거든.”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나약한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지며 내 자리를 내어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 시기쯤 검색어에는 ‘연상은 혹사’ 같은 말들이 나오며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그램 녹화를 하러 스튜디오에 갔는데 피디님께서 “힘들지? 아무래도 한 시즌을 혼자 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우리가 충원해줄게.”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는가?


 ‘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라는 말이 나를 깨웠다. “아뇨. 피디님. 저 하나도 안 힘든데요. 저 할 수 있어요. 제가 혹시 쓰러지면 그때 뽑아주세요. 저 정말 끝까지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외쳤다.

저 할 수 있어요!!!!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지 피디님은 씩 웃으시며 “그래, 믿는다.” 짧게 답하셨다.


  ‘믿는다’라는 말은 내게 용기를 준다. 못할 것 같아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말이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것, 내가 믿게끔 만드는 것. 이것들이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야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주전 선수가 어떠한 이유로 자리를 비웠는데 백업으로 나온 선수가 그 날 수훈 선수가 된다든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른 선수가 대신 나갔는데 그 선수가 엄청난 활약을 했다든지. 그렇다고 주전 자리가 하루 사이에 바뀌진 않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야금야금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되면 결국 두 사람이 바뀌게 되겠지.


 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돼. 안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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