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상은 Aug 03. 2020

이게 말이 돼? 충격적인 데뷔 무대

한국인, 네덜란드인, 일본인의 합동 무대

  2013년 푹푹 찌는 어느 날, 광주행 차에 올랐다. 두 달째 교육만 받고 있었는데 드디어! 첫 인터뷰 날짜가 잡힌 것이다. 삼성과 기아의 경기에 배정이 되었는데 시청률이 높고 인기가 많은 팀이라 너무 긴장이 되었다. 그 전날 스태프들과 같이 내려가서 몸보신을 한다고 오리탕을 먹었는데 그대로 체해버렸다. 그 후로 오리탕은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었다. 당일 역시 아주 조금 먹은 밥 마저 그대로 얹혔다.. 야구장 가기가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무등경기장으로 향했다.


 그 날 경기 전 인터뷰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최형우 선수였는데, 녹화라는 생각에 편안함을 느껴서인지 그런대로 잘 마쳤다. 그리고 경기 내내 기록지를 작성하며 열심히 경기를 보았다. TV에서 수훈 선수 인터뷰를 볼 때는 당연히 작가도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경기 후반에 수훈 선수가 정해지면 질문은 모두- 내가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야 더 좋은 질문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정말 너무 촉박하고 언제든 경기가 뒤집어질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다. 아무튼 그 넓은 야구장에 혼자 서있는 느낌이었다.


추억이 되어버린 XTM 채널


 데뷔 무대였기 때문에 옷도 나름대로 신경 써서 샤랄라~하는 샛노란 시폰 원피스를 입고 갔다. 인터뷰를 하러 야구장에 나가기 전만 해도 그 옷이 나를 힘들 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수훈 선수 인터뷰 상대는 밴덴헐크라는 선수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선수였는데 영어도 곧 잘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그 날 통역사로 나온 분이 코야마 진이라는 일본인 코치였다. 그러니까 나의 첫 데뷔 무대는 한국말을 하는 나, 영어로 답하는 네덜란드인, 그걸 대구 사투리로 통역해주는 일본인....이었다. 그 인터뷰 현장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웃겼나 보다. 오죽하면 내 나무 위키에

2013년 8월 10일 릭 밴덴헐크의 수훈 선수 인터뷰를 통해 첫 현장 데뷔를 가졌다. 재밌는 점은 일본인인 코야마 코치가 네덜란드인인 밴덴헐크의 영어를 대구 사투리로 통역(...)해서 전달했다는 점. 안 그래도 첫 인터뷰라 긴장됐을 텐데 일본인의 대구 사투리를 알아들어야 하는 서울 출신 아나운서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고 설명되어있다. 긴장이 돼서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관중석에서는 '누나!! 옷 조심하세요!!'라고 여러 명의 팬분들이 말해주셨다. 낮에는 햇빛이 쨍쨍해서 몰랐는데 밤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것이다. 한 손으로는 수첩과 옷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쥐고 참 힘들게 방송을 마쳤다. 그 후부터는 청바지를 주로 입기 시작했다...


혼돈의 현장


 이렇게 쓰면서 당시를 회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너무 난장판이었지만 웃기기도 하다. 시간이 그만큼 지나서 웃을 수 있는 거지 그 때는....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쉽긴 하다. 밴덴헐크 선수는 KBO무대를 평정하고 일본으로 갔는데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다가 요즘 힘든 모양이다. 그때 그 시절처럼, 다시 에이스가 되면 참 뿌듯할 것 같다. 힘내세요!!! 저도 힘낼게요!!!


 

이전 02화 천시(天時)를 기다리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