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네덜란드인, 일본인의 합동 무대
2013년 푹푹 찌는 어느 날, 광주행 차에 올랐다. 두 달째 교육만 받고 있었는데 드디어! 첫 인터뷰 날짜가 잡힌 것이다. 삼성과 기아의 경기에 배정이 되었는데 시청률이 높고 인기가 많은 팀이라 너무 긴장이 되었다. 그 전날 스태프들과 같이 내려가서 몸보신을 한다고 오리탕을 먹었는데 그대로 체해버렸다. 그 후로 오리탕은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었다. 당일 역시 아주 조금 먹은 밥 마저 그대로 얹혔다.. 야구장 가기가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무등경기장으로 향했다.
그 날 경기 전 인터뷰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최형우 선수였는데, 녹화라는 생각에 편안함을 느껴서인지 그런대로 잘 마쳤다. 그리고 경기 내내 기록지를 작성하며 열심히 경기를 보았다. TV에서 수훈 선수 인터뷰를 볼 때는 당연히 작가도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경기 후반에 수훈 선수가 정해지면 질문은 모두- 내가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야 더 좋은 질문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정말 너무 촉박하고 언제든 경기가 뒤집어질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다. 아무튼 그 넓은 야구장에 혼자 서있는 느낌이었다.
데뷔 무대였기 때문에 옷도 나름대로 신경 써서 샤랄라~하는 샛노란 시폰 원피스를 입고 갔다. 인터뷰를 하러 야구장에 나가기 전만 해도 그 옷이 나를 힘들 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수훈 선수 인터뷰 상대는 밴덴헐크라는 선수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선수였는데 영어도 곧 잘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그 날 통역사로 나온 분이 코야마 진이라는 일본인 코치였다. 그러니까 나의 첫 데뷔 무대는 한국말을 하는 나, 영어로 답하는 네덜란드인, 그걸 대구 사투리로 통역해주는 일본인....이었다. 그 인터뷰 현장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웃겼나 보다. 오죽하면 내 나무 위키에
2013년 8월 10일 릭 밴덴헐크의 수훈 선수 인터뷰를 통해 첫 현장 데뷔를 가졌다. 재밌는 점은 일본인인 코야마 코치가 네덜란드인인 밴덴헐크의 영어를 대구 사투리로 통역(...)해서 전달했다는 점. 안 그래도 첫 인터뷰라 긴장됐을 텐데 일본인의 대구 사투리를 알아들어야 하는 서울 출신 아나운서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고 설명되어있다. 긴장이 돼서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관중석에서는 '누나!! 옷 조심하세요!!'라고 여러 명의 팬분들이 말해주셨다. 낮에는 햇빛이 쨍쨍해서 몰랐는데 밤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것이다. 한 손으로는 수첩과 옷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쥐고 참 힘들게 방송을 마쳤다. 그 후부터는 청바지를 주로 입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면서 당시를 회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너무 난장판이었지만 웃기기도 하다. 시간이 그만큼 지나서 웃을 수 있는 거지 그 때는....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쉽긴 하다. 밴덴헐크 선수는 KBO무대를 평정하고 일본으로 갔는데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다가 요즘 힘든 모양이다. 그때 그 시절처럼, 다시 에이스가 되면 참 뿌듯할 것 같다. 힘내세요!!! 저도 힘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