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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상은 Jul 31. 2020

갑자기 직업을 잃었어요.

슬픔의 5단계

 

 실직 5개월 차다. 결혼과 역병이 맞물리면서 신기하게 일이 사라졌다. 결혼 때문이라 하기엔 진행자가 바뀐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들이 싹 없어졌다. 스포츠가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렇게 된 것인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어디선가 슬픔의 5단계를 본 적이 있는데 내 얘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딱 맞았다.


‘부정 - 분노- 타협 - 우울 - 수용'


 아닐 거야.. 이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다가 아니 어떻게  없어질 수가 있냐고!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예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위로하려 애써보다가 금세 우울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수용'단계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나뿐만 아니라  어려운 시기니까 어쩔  없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현실을 수용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있는 용기도 생겼다. 여태까지는 다른 누군가가 일을 찾아주고 제안해주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닌  같다. 원래 했던 일과는 별개로  혼자서도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지났다.



 그런데 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은 아니라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항간에서는 유튜브를 하라고 인플루언서로 뭘 팔아보라고 했다. 물론 요즘 뜨고 있는 활동이고 빨리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런데 이왕 새로운 것에 도전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바쁜 일상에 잠시 잊고 있던 내 취미가 생각났다. 글을 읽고 끄적거리기. 일이 너무 바쁠 때는 힐링 차원에서, 한가할 때는 시간을 보내는 요량으로 한 일들이었다. 읽는 건 습관이 되었는데 쓰는 건 아무래도 오랜만이라 아직 낯설긴 하다. 그래도 차츰차츰 나아지겠지 하고 계속해서 써보는 것이다.


 이 역병이 아니었으면 나는 뙤약볕 밑에서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나의 행복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만약 그랬으면,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하루에 만족하며 살았을 테니까.


 실패와 상실은 이상하게도 다른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길을 내가 잘 선택하고 걷기만 하면, 오직 하나였던 길이 여러 갈래가 되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참 역설적이다. 역설적이어서 좌절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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